“야 뽀로로다~.”

아이들이 TV 앞으로 모여든다. “노는 게 제일 좋아. 친구들 모여라~”하는 ‘뽀로로’ 노래에 엉덩이를 들썩거린다. 한국뿐 아니라 프랑스 영국 핀란드 일본 대만 이란 등 전 세계 120개국의 어린 아이를 둔 가정에서 일어나는 일이다. 가히 ‘뽀로로 신드롬’이라 부를 만하다.

‘뽀롱뽀롱 뽀로로’는 한국 애니메이션산업에 신기원을 열었다. 120개국에 수출돼 로열티 수입만 연간 100억원에 이른다. 브랜드 가치는 4000여억원이며 누적 매출은 1조원을 넘어섰다. 무엇보다 애니메이션의 하청공장이던 한국을 창작요람으로 탈바꿈시켰다.

《집요한 상상》은 한국의 디즈니를 꿈꾸는 최종일 아이코닉스 대표(사진)가 ‘뽀로로’를 만든 크리에이티브 과정을 정리한 책이다. 저자는 ‘뽀로로’의 성공 비결을 기발한 재능이 아니라 쉼 없이 일하는 성실성과 상상력의 집요함에서 찾아낸다.

저자는 크리에이티브는 천재의 전유물이 아니라고 강조한다. 선천적으로 창조력을 타고난 사람도 있지만 대부분은 그렇지 않다. 자신에게 뛰어난 점이 있다면, 다른 사람들보다 훨씬 많은 시간을 들여 고민하고 노력한다는 것. 일반 직장인보다 심한 워커홀릭이어서 아이디어를 좇아 여행을 떠나는 사치는 경험해본 적이 없다고 한다.

저자는 ‘이번이 마지막’이란 절박함과 ‘내 아이들이 좋아하는 작품’을 만들고 싶다는 소박함이 ‘뽀로로’를 만들어냈다고 회고한다. “8할의 실패 끝에 성공했다”는 것이다.

저자는 원래 대형 광고회사에 근무했지만 늘 허전했다. ‘내가 만들고 싶은 것’을 만들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광고도 1차 소비자인 대기업 광고주를 위해 만든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로지 좋은 직장을 선택한 결과였다. 광고는 ‘내가 잘할 수 있는 일’이지만 ‘내가 좋아하는 일’은 아니란 결론에 도달했다. 우여곡절 끝에 자신이 좋아하는 일인 애니메이션에 뛰어들었다. 그러나 실패가 거듭됐다. 의도한 만큼 완성도가 따라주지 않았다.

광고기획자 출신으로 장기적인 계획을 수립한 게 도움이 됐다. 방향성을 잃지 않으면서도 조바심의 함정에 빠지지 않도록 해줬다. 애니메이션은 아주 지루한 작업인데 끝까지 적당주의에 빠지지 않고 집중해서 완성도를 유지하는 데도 주효했다.

저자는 세계 애니메이션 시장을 철저히 공부했다. 일본의 아동용 애니메이션은 양과 질 면에서 뛰어났다. 그래서 일본이 상대적으로 취약한 유아용 애니메이션에 뛰어들기로 했다.

또 세계 시장에 강력한 주인공이 없던 펭귄을 캐릭터로 정했다. 수많은 논의를 거치면서 현재의 이등신 ‘뽀로로’를 만들게 됐다. 저자는 이 과정에서 독재자로 군림했다. 수많은 아이디어를 가차없이 잘라냈다.

그에게 크리에이티브는 재기발랄한 상상이라기보다는 작품과 생각을 효과적으로 전달하기 위한 전략이었다. 가령 악당에 쫓기는 아이들이 절벽을 뛰어넘을 때의 크리에이티브에 대해 이렇게 정리한다. “멋지게 뛰어넘거나 색다른 방법으로 뛰어넘는 것은 부차적인 문제다. 가장 ‘뽀로로’다운 방법으로 뛰어넘는 것이 중요하다. 너무 평범할 수도 있지만 크리에이티브는 ‘뽀로로’의 개성과 정체성을 가장 잘 표현하는 방식으로 구현돼야 하기 때문이다.”

유재혁 기자 yooj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