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도 사는 게 아닙니다. 병을 치료할 약이 있는데도 팔지 않는다고 생각해보세요. 이건 그냥 죽으라는 거죠.” 얼마 전 기자의 이메일로 들어온 한 희귀질환 환자의 호소다. 처음엔 그냥 흘러넘겼다. 희귀질환 의약품을 둘러싼 정부와 제약회사 간 약가 협상이 진행되고 있고, 곧 결론이 나려니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사정이 녹록지 않다. 조금이라도 약을 싸게 사려는 정부(건강보험공단)와 조금이라도 약값을 더 받으려는 글로벌 제약사 간 이견이 좁혀지지 않고 있어서다.

현재 희귀질환 치료제는 세계적인 다국적 제약사들만 만들고 있다. 이들은 세계시장에서 높은 가격을 인정받고 있기 때문에 한국에서도 형평성 차원에서 같은 가격을 받아야 한다는 주장을 펴고 있다. 정부는 한정된 건강보험 재정을 이유로 그렇게 높은 가격에는 보험급여 적용 대상으로 지정할 수 없다고 버티고 있다.

그런 사례 중의 하나가 희귀혈액암의 일종인 다발성골수종 치료제 ‘레블리미드’다. 다발성골수종은 암세포가 뼈에 침투해 뼈를 부러뜨리는 희귀암이다. 레블리미드를 쓰면 생명을 연장할 수 있지만, 그렇지 않으면 대다수가 1년을 버티지 못한다. 한 달 약값은 1000만원가량. 아직 보험급여가 안 된다. 그래서 환자들 사이에선 ‘돈 있으면 살고, 돈 없으면 죽는다’는 말이 나오는 병이다.

레블리미드를 국내 독점 공급하는 세엘진코리아는 지난 11일 약값을 52% 내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급여 등재를 신청했다. 그러나 여전히 약값이 비싸다는 이유로 거부당했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공급자 측에선 “손을 털고 한국에서 철수하겠다”는 말까지 나온다.

희귀병 환자들의 의욕을 꺾는 일이 또 있다. 근육질환인 폼페병과 유전병 뮤코다당증에 적용되던 리펀드제도가 이달 말로 종료된다는 소식이다. 리펀드제도란 외국에서 받는 금액대로 국내에서 판매하고, 건강보험공단에서 원하는 가격과의 차액 만큼을 글로벌 제약사가 건보공단에 다시 내는(리펀딩) 제도다.

희귀질환 환자들은 “리펀드 같은 제도를 활용하면 제약사도 건보공단도 모두 좋을 텐데 이런 제도를 확대하기는커녕 오히려 종료시키려 한다”며 발을 구르고 있다. 정부의 결정이 늦어지는 사이 희귀병 질환자들의 생명이 타들어간다는 사실을 잊지 않았으면 한다.

이준혁 중기과학부 기자 rainbow@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