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 칼럼] 골프 온난화
돈 잃고 속 좋은 사람 없다고 했다. 골프도 예외가 아니다. 평소 얌전한 사람도 내기만 시작되면 ‘전투모드’로 바뀐다. 15번홀 쯤 지날 때까지 스킨을 하나도 못 먹어 봐라. 겉으론 태연한 척하지만 속은 부글부글 끊는다. “당장 때려치워야지”하는 체념과 “오늘의 수모를 나중에 몇 배로 갚아줘야지”하는 투지 사이를 오락가락하며 불편한 침묵에 빠져든다.

내기에 들어가면 부부간에도 양보가 없다는 우스개까지 나돈다. 실력이 비슷한 부부가 내기 골프를 했단다. 공이 잘 안 맞아 ‘뚜껑’이 열린 남편이 아내에게 ‘구찌’를 놨다. “사실 당신 만나기 전에 사귀던 여자가 있었어.” 아내는 “나도 고백할 게 있어요. 결혼 전에 성전환 수술을 했거든요”라고 맞받았다. 그러자 남편이 버럭 화를 내며 소리쳤다. “야, 이 새x야, 그러면서 지금까지 레이디 티에서 쳤단 말이야?”

내기의 정석은 타수대로 돈을 주고 받는 스트로크 방식이다. 하지만 살벌해지기 쉬운 까닭에 스킨스 게임을 많이 한다. 정통 스킨스에 이런저런 조건을 덧붙이는 파생상품도 부지기수로 개발되고 있다. 대체로 남의 주머니에 들어간 돈을 끄집어 내는 쪽이다. 고수급은 투덜대지만 하수들은 ‘골프 온난화’라며 반기는 분위기다. 고전적 독식(獨食)방지 장치인 OECD제도만 해도 그렇다. ‘오빠 삼삼해’에 ‘나무’와 ‘도로’를 추가하는가 하면 거기에 ‘가라(연습)’ 스윙 금지를 붙여 ‘나도 오빠가 삼삼해’로 만들기도 한다. 굿샷, 마크 같은 영어를 쓸 경우 벌금을 추가하는 ‘나도 오빠가 영 삼삼해’도 있다. ‘오빠 이상해’는 더블보기와 2퍼팅 이상이면 벌금을 부과하는 가혹한 규정이다. ‘나도 오빠가 영 이상해’쯤 되면 어지간한 싱글이라도 견뎌낼 재간이 없게 된다.

요즘 스트로크와 스킨스를 절묘하게 접목시킨 ‘369게임’이 유행이다. 방식은 좀 복잡하다. 4명이 10만원씩 40만원을 모았다 하자. 이를 6만원씩 여섯 개의 상금로 나눈다. 그리고 3개 홀을 지날 때마다 합산해 1~3위에게 각각 3만, 2만, 1만원씩 준다. 18홀 동안 여섯 차례 시상하는 셈이다. 나머지 4만원은 니어리스트 몫이다. 컨시드(OK) 남발을 막을 수 있고, 마지막까지 방심하지 않는다는 것이 장점이다.

골프 내기는 대체로 고수에게 유리하다. 기량도 기량이지만 경험이 많고 ‘멘탈’에 강해서다. 특히 스트로크 플레이에서 배판은 하수에게 절대 불리하다. 핸디캡을 감안하지 않고 같은 액수로 돈을 걸기 때문이다. 홧김에 하수가 배판을 부르면 질 확률은 더 높아진다. 결국 “레슨비 톡톡히 냈다고 쳐” 따위의 소리를 들으며 개평이나 기다리는 처지로 전락하기 십상이다.

이정환 논설위원 jh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