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영의 신' 이나모리를 배우자…대형 컨벤션센터 가득 메운 차세대 중소기업 리더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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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촌 리포트] 日 세이와주쿠 세계대회 르포
교토지역 中企사장 10명, 공부모임 '세이와주쿠' 결성…세계 70개 지부로 규모 커져
이나모리 회장 직접 참석…경영 본질·리더십 등 컨설팅
교토지역 中企사장 10명, 공부모임 '세이와주쿠' 결성…세계 70개 지부로 규모 커져
이나모리 회장 직접 참석…경영 본질·리더십 등 컨설팅
지난 17일 일본 요코하마에 있는 대형 컨벤션센터인 ‘파시피코 요코하마’. 4층으로 이뤄진 공연장에 4000여명의 사람들이 빼곡히 들어찼다. 이날 행사는 ‘세이와주쿠(盛和塾) 제20회 세계대회’. 일본을 포함한 전 세계 70개 세이와주쿠 지부에서 올라온 참석자들이 조용히 무대를 응시했다. 세이와주쿠는 이나모리 가즈오(稻盛和夫) 교세라 명예회장의 경영철학을 공부하는 일종의 경영아카데미다.
◆세이와주쿠가 없었더라면…
첫 번째 발표자는 야마가타(山形)현에서 ‘도호쿠(東北)햄’이라는 가공식품업체를 운영하고 있는 오비야 신이치(帶谷伸一) 사장. 무대 한켠에 앉아 있는 이나모리 회장에게 목례를 하고 1시간가량 자신의 경영 체험담을 얘기했다. 차분했던 목소리는 도산 위기에 처했던 1997년 무렵에 이르자 조금씩 떨리기 시작했다.
“그땐 정말 아무 희망이 없었어요. 회사는 쓰러져 가고 직원들은 하나둘 회사를 버리고. 소극적인 성격이라 누구에게 툭 터놓고 하소연도 못했습니다.”
그 시절 오비야 사장이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참여한 곳이 세이와주쿠. 비슷한 처지의 중소기업 사장들과 매주 이나모리 회장의 경영철학을 공부하면서 문제 해결의 실마리를 찾아나갔다. “세이와주쿠가 없었다면 지금의 저도 없었을 겁니다.”
한때 4억엔을 밑돌던 도호쿠햄의 매출은 작년 8억5300만엔으로 두배 이상 불어났다. 매년 마이너스였던 경상이익률도 6%대로 올라섰다. 오비야 사장의 발표가 끝나자 이나모리 회장이 마이크를 잡았다. “정말 잘 견뎌내셨습니다. 하지만 아직 안심할 단계는 아닙니다. 최소한 경상이익률이 10%대에 도달할 때까지는 긴장을 늦추면 안됩니다.”
이틀간 이어진 이번 행사엔 중소기업 사장 8명이 발표자로 나섰다. 발표가 끝나면 매번 이나모리 회장이 경영 코멘트를 해주었다. 객석을 메운 참석자들은 대부분 현재 중소기업을 운영하고 있는 경영자들. 무대에 선 발표자의 한마디 한마디에 같이 웃고, 같이 한숨 쉬었다. 기업경영판 ‘간증회’ 분위기였다.
◆자발적 공부모임으로 시작
세이와주쿠는 1983년 결성됐다. 이나모리 회장을 따라 배우려는 교토지역 중소기업 사장 10여명이 자발적으로 만든 공부모임이 시초다. 입소문을 타면서 회원이 급증했다. 지난 5월 말 기준으로 70개 지부, 7399명에 달한다. 미국 중국 대만 브라질 등 해외 지부도 8곳이나 된다.
어느 곳이나 운영방식은 비슷하다. 매주 금요일에 스터디 그룹별로 모여 이나모리 경영철학을 연구하고, 한 달에 한 번씩은 지부 전체의 모임을 갖는다. 서로의 고민을 얘기하는 과정에서 나름의 해결책을 찾아 나가는 방식이다. 자율적인 모임인 만큼 운영도 개방적이다. 참가자가 원하기만 하면 등록된 지부 이외의 공부모임에도 언제든 참여할 수 있다.
이나모리 회장은 세이와주쿠 결성 초기부터 적극적으로 공부모임을 지원하고 있다. 각 지부를 직접 찾아가서 자신의 경험담을 들려주고, 구체적인 경영지침도 제시한다. 지금도 매달 한 번꼴로 일본 전역의 지부를 돌며 세이와주쿠 정기모임에 참석한다. 젊은 경영자들의 애로를 들어주느라 초저녁에 시작한 정기모임은 밤늦게까지 이어지기 일쑤다. 파나소닉그룹 창업자인 마쓰시타 고노스케(松下幸之助)가 마쓰시타정경숙(松下政經塾)을 만들어 일본의 차세대 정치인들을 키워냈다면, 이나모리는 세이와주쿠를 통해 미래의 경영자를 양성하고 있는 셈이다.
◆체계화된 경영철학 전수
세이와주쿠 회원들은 모두 ‘경천애인(敬天愛人)’이라는 문구가 찍힌 베이지색 수첩을 들고 다닌다. 여기엔 일목요연하게 정리된 경영이념과 지침이 적혀 있다. 대표적인 것이 ‘세이와주쿠경영 12개 조항’. ‘사업의 목적과 의의를 명확히 하라’는 1조부터 시작해 ‘항상 긍정적인 마음으로 꿈과 희망을 가지라’는 마지막 조항까지 어찌보면 당연한 얘기들 모음이다.
그러나 온갖 역경을 헤쳐온 이나모리 회장의 경험에서 우러나온 경구라는 점에서 받아들이는 회원들의 마음가짐은 남다르다. 가가와(香川)현에서 노인용 신발을 만드는 공장을 운영 중인 소고 다카오(十河孝男) 사장은 “처음엔 쓱 한 번 읽고 지나갔던 문구들이 시간이 지날수록 가슴에 와 닿는다”며 “지금도 매주 금요일 아침에 주요 간부들이 모여 12개 조항을 복창하며 각오를 다진다”고 말했다.
이뿐만 아니다. ‘리더가 완수해야 하는 10가지 역할’ ‘불황에 대처하는 방안’ ‘회계의 원칙’ ‘아메바 경영의 목적’ ‘경영자로 대성하기 위한 방안’ 등의 각종 지침이 가득하다.
◆묻고 답하며 기업갈증 풀어
세이와주쿠 멤버들은 대부분 아버지나 할아버지로부터 회사를 물려받은 2세 내지 3세 경영인이다. 비교적 유복한 어린 시절을 보낸 대신 경영 경험은 일천하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이나모리 회장은 “일본의 기업들은 대부분 2차대전 이후 설립돼 지금은 아들 또는 손자가 경영하고 있다”며 “이들에게 경영의 본질과 리더로서 갖춰야 할 덕목 등을 가르쳐주자는 봉사활동 차원에서 세이와주쿠를 운영하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세이와주쿠가 제시하는 경영철학과 이념은 다소 추상적이다. 그러나 회원들과 갖는 정기모임에서 이나모리 회장이 던지는 해답은 매우 구체적이다. 예를 들어 “인재를 붙잡아 두기 위해 어느 정도의 보너스를 주는 게 타당하냐”는 젊은 중소기업 사장의 질문에는 “기업은 전 직원의 물심양면에 걸친 노력의 결과물이다. 실적을 냈다고 특정 개인에게 차별적인 보상을 하는 미국식 성과주의는 지양해야 한다”고 답하는 식이다.
다양한 ‘공짜 컨설팅’ 뒤에는 항상 하나의 조건이 붙는다. 리더의 책임감이다. “기업은 종업원과 그 가족의 행복을 책임지는 곳이다. 경영자는 항상 회사가 누구를 위해 존재하는가라는 근본적인 고민을 해야 한다.” 이나모리 회장이 젊은 경영자들에게 빼놓지 않고 부여하는 숙제다.
이나모리 회장은
27세에 교세라 창업 한 해도 적자 안 내…빈사직전 JAL 맡아 8개월 만에 흑자로 돌려세워
일본 항공산업을 대표하는 일본항공(JAL)은 2010년 1월 법정관리에 들어갔다. 떠안고 있는 빚만 2조3000억엔(약 34조원)에 달했다. 방만한 경영에다 엔고(高)까지 겹치면서 빈사상태에 빠졌다. 누가 봐도 답이 보이지 않던 상황. 아무도 일본항공의 ‘구원투수’로 나설 엄두를 내지 못했다.
하토야마 유키오(鳩山由紀夫) 당시 일본 총리는 고민 끝에 이나모리 가즈오 교세라 명예회장(사진)을 찾았다. 팔순을 바라보는 노(老) 경영자의 마음을 돌려세우기 위해 삼고초려를 했다. 하토야마 총리의 판단은 적중했다. 이나모리 회장은 파산 직전의 JAL을 8개월 만에 흑자로 돌려세웠고, 2년 연속 사상 최고 실적을 냈다.
이나모리 회장은 마쓰시타 고노스케(松下幸之助ㆍ파나소닉 창업자), 혼다 소이치로(本田宗一郞ㆍ혼다자동차 창업자)와 함께 일본에서 가장 존경받는 ‘3대 경영인’으로 꼽힌다.
그는 1932년 일본 규슈 남단 가고시마에서 7남매 중 차남으로 태어났다. 지방국립대인 가고시마대 공학부를 나왔다. 첫 직장이었던 쇼와공업이 도산위기에 몰리자 27세에 교토세라믹(현 교세라)이라는 회사를 창업했다.
종업원 28명으로 출발한 교세라는 현재 전 세계에 221개 계열사를 두고 6만명이 넘는 종업원을 거느린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했다. 창업 후 지금까지 한번도 적자를 낸 적이 없고, 일본이 장기침체에 빠진 ‘잃어버린 20년’ 동안에도 매출이 3배 이상 불어났다.
이나모리 회장은 1984년 다이니덴덴 (第二電電ㆍ현 KDDI)이라는 회사도 설립해 일본 2위의 통신업체로 성장시켰다. 그동안 그가 경영한 교세라 KDDI 일본항공의 연 매출액을 합치면 6조엔(약 90조원)을 넘는다. ‘씨없는 수박’으로 유명한 우장춘 박사의 넷째 사위로 한국과도 인연이 있다.
요코하마=안재석 특파원 yago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