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위기에 직면한 선진국과 개발도상국에 대해 국제통화기금(IMF)이 내린 처방이 정반대라는 사실은 충격적이다. 개도국에는 금리 인상과 경제성장률 하향 조정, 허리띠 졸라매기, 채무 전액 상환, 민영화 등의 조치를 요구한다. 반면 미국에는 금리 인하와 거액의 정부자금을 동원한 경기부양책, 주요 기업의 국유화 등을 취하도록 권한다.

IMF는 독립적인 기관이 아니라 미국 재무부의 한 부서나 다름없다. 미국이 다른 나라에 제공한 대출이나 투자가 부실해질 경우 손해보지 않는 조치를 취해주기 때문이다. 강대국의 이익만을 대변하는 IMF나 세계은행 등은 이제 민주적인 형태로 개편돼야 한다는 지적이다. 세계인의 복지와 안녕을 위한 연합체가 된다면 국가 간 불평등은 한층 해소될 것이란 주장이다.

《경제민주화를 말하다》는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 조지프 스티글리츠와 세계적인 지성 놈 촘스키 등이 양극화의 위기 속에서 다수의 권리와 이익을 보장하는 쪽으로 새로운 경제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고 제안하는 책이다.

경제민주화가 국내에서는 재벌 개혁과 부의 공정한 배분 등 한정적인 주제로 언급되지만 더 넓은 시각으로는 더 많은 사람들이 인간다운 가치를 누리며 살도록 경제의 여러 부분을 개혁해야 한다는 의미다. 소수의 부자보다는 가난한 다수가, 무역보다는 생산이, 금융보다는 노동이 더 중요시되고 권리를 보장받는 새로운 경제시스템을 구축하자는 것이다.

전 세계 부자와 가난한 사람 사이의 격차가 사상 최고로 벌어졌다. 연간 1조~1조6000억달러로 추정되는 탈세 규모도 최고 수준이다.

부자들은 재산을 불리면서도 세금은 적게 내고 있다. 1995년 미국에서 소득세 최상위 400명이 납부한 세금이 2006년 최상위 400명보다 3배나 많았다. 그러나 경제위기로 인해 중산층은 해마다 줄고 있다. 자원을 효율적으로 배분해 경제적 불평등을 해소하려면 정부의 역할과 규제가 확대돼야 한다는 것이다.

저자들은 선진국의 심부름꾼으로 전락한 IMF와 세계은행, 국제무역기구 등을 개혁해야 한다고 말한다. 선진국의 자원 독점을 막아 가난한 국가의 부담을 덜어주고, 선진국과 제3세계 국가 간의 무역 형평성도 확보해야 한다는 것이다.

비정상적으로 비대해진 금융시스템의 살을 빼고 실물 경제를 부양시키는 정책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주장도 설득력을 얻는다. 금융부문 개혁을 경제민주화의 기회로 삼는 게 바람직하다는 의견도 제시한다. 구제금융을 받은 은행들이 나중에 수익을 거두면 국민들에게 돌려주도록 시스템을 개혁해야 한다는 것이다.

유재혁 기자 yooj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