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년 전 일이다. 1994년 상반기에 헤지펀드 연합군이 당시 ‘마에스트로’라고 불리웠던, 앨런 그린스펀 미국 중앙은행(Fed) 의장에게 초강력 펀치를 얻어맞고 파멸 일보 직전까지 갔던 사건이 있었다.

1990년 초에 미국 경제는 저축대부조합의 대규모 도산 위기를 경험하게 된다. 이에 Fed는 단기금리를 역사상 최저 수준으로 유지하면서 경기 진작을 시도했다. 헤지펀드업계의 ‘빅3’ 중 하나인 마이클 스타인하트와 추종세력은 단기차입금을 매우 저렴하게 빌릴 수 있었고, 이 자금으로 상당히 수익성 높은 장기채권을 매입, 금리차를 이용해 돈을 버는 데 집중했다.

1990년대 초 장기채권금리는 지속적으로 하락했고, 헤지펀드들은 장단기 금리차뿐만 아니라 채권 자체에 대한 시세차익까지 거둘 수 있었다. 이런 식으로 헤지펀드가 엄청난 수익을 거두기 시작하자, 1992년 한 해 동안에만 무려 2000개의 헤지펀드가 새로 생겼다.

그린스펀 의장은 그러나 1993년 말부터 초저금리 시대를 마감할 타이밍에 도달했다고 판단했다. 그는 1994년 2월 연방기준금리를 연 3%에서 연 3.25%로 소폭 올렸다. 채권시장이 조금만 하락해도 거의 100배나 레버리지된 헤지펀드의 취약한 자본은 모두 날라가 버릴 수 있었다. 금리 상승에 반응해 헤지펀드들은 채권을 대량 매도했다.

헤지펀드들이 손실을 보자 투자은행들은 마진 콜을 때리기 시작했다. 헤지펀드들의 1억달러 채권보유에 100만달러의 담보를 요구했으나, 당장 이를 500만달러로 5배나 인상했다.

헤지펀드들을 보유 포지션을 대량 처분할 수밖에 없었다. 스타인하트 등은 채권시장의 방향성과 유동성을 완전히 오판했다. 스타인하트가 과거 1970년대 주식 블록트레이딩 시장에서 누렸던 시장우월적 지위는 레버리지된 채권시장에서는 전혀 통하지 않았다.

광란이 끝난 1994년에 스타인하트 펀드는 연초 대비 30%가량인 자본 13억달러가 날라가 있었다.

헤지펀드가 헤지를 전혀 하고 있지 않았던 것 아니냐는 비판이 쏟아졌다. 이 사건은 초기 매크로 투자의 종말로 널리 회자되고 있다.

김지욱 < 삼성증권 이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