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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0대 중졸 고리 사채업자…그는 폐광마을 '제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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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찰팀 리포트] 삼척 도계읍에 무슨 일이…동네 상인 절반 250명 사채의 덫에

    3000만원으로 돈놀이 시작…5년 만에 25억 넘게 챙겨
    폐광이후 생계 어려운 주민 유혹…이자 하루만 늦어도 감금·폭행
    야반도주한 사람도 숱해…보복 두려워 피해자들 '쉬쉬'

    “평범한 광부의 아들이 이 정도로 악랄해질 줄 몰랐죠. 최고 연 400%가 넘는 고리사채에 못 견뎌 몇 년 새 야반도주한 사람이 20명이 넘습니다.”

    지난 12일 강원 삼척시 도계읍 도계역 광장. 읍내 중심가인 이곳에서 만난 김모씨(45)는 도계읍 상인 250여명을 상대로 불법고리 사채를 일삼다 검거돼 경찰 조사를 받고 있는 이모씨(30)의 얘기를 꺼내자 치를 떨었다. 최근 적발된 불법 고리사채 사건의 피해자는 도계읍 전체 인구(1만3000여명)의 2%에 달한다. 이곳 상인 650여명의 40%가량이 피해를 입었다. 5년 전 3000만원으로 시작한 사채업은 30세에 불과한 청년에게 건물 3채에 당구장 고깃집 유흥주점 등 점포 5개를 안겨줬다. 부동산 외에 굴리는 현금도 25억여원으로 불어났다.

    한때 몰려드는 외지인으로 넘쳐나던 탄광마을이 폐광마을로 쇠락한 도계읍에서는 최근 5년 동안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일까. 이 사건을 전담하기 위해 이곳에 파견돼 두 달 동안 주민을 상대로 조사를 벌이고 있는 황환걸 강원지방경찰청 수사과 팀장과 취재하는 과정에서 만난 읍민들은 알 수 없는 공포에 질려 있었다.

    이씨에 대한 질문만 나오면 피해주민들은 놀란 듯 입을 굳게 다물었다. 수차례 질문을 받고서야 곁눈질하며 “이××에게 돈을 빌린 사실이 없다”는 한마디를 던지는 게 전부였다. 쇠락한 폐광촌에서 ‘청년 사채꾼’이 그동안 주민들을 공포에 떨게 하고 저지른 전횡을 느낄 수 있었다.

    황 팀장은 “수사 과정에서 이씨의 보복이 두려워 경찰 진술을 거부하는 일이 비일비재했다”며 “이씨가 피해자들에게 전화를 걸어 혐의 사실을 부인하라고 협박한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도계역광장에서 손님을 기다리던 한 택시기사는 “수사를 받고 있는 이씨가 ‘13일에 풀려나온다’는 소문이 파다하다”며 “이씨가 쉽게 풀려날까 상인들은 두려움에 떨고 있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평범한 동네청년…5년 만에 25억원 챙겨

    피해 주민들조차 보복이 두려워 쉬쉬해 자칫 묻힐 뻔했던 이 사건의 전말은 지난 5월 익명의 제보로 드러났다. 제보자는 고리사채를 견디지 못해 야반도주한 피해자로 알려졌다.

    경찰과 도계읍에서 만난 피해 읍민들의 증언에 따르면 이씨는 2008년 5월부터 올 6월까지 영세상인과 서민에게 30억원을 빌려주고 법정이자율(연 39%)을 초과해 최고 연 406%의 고리로 25억원을 챙기는 등 불법 대부업을 해온 혐의로 조사받고 있다. 마을 주민들에 따르면 이씨의 숨겨둔 재산까지 합치면 100억원에 이를 것으로 추정됐다. 이대로 불법고리 사채사실이 적발되지 않았다면 5년 뒤에는 도계읍 상가 절반이 이씨 소유가 됐을 것이라고 말하는 주민도 있을 정도였다.

    경찰에 따르면 도계읍에서 병원을 운영하고 있는 의사 A씨의 피해가 대표적이다. A씨는 주식투자로 큰 손실을 입어 병원이 넘어갈 처지에 내몰리자 2009년 3월 이씨에게 5000만원을 빌렸다. 선이자 250만원을 제하고 A씨가 받은 돈은 4750만원. 매달 250만원의 이자를 내는 조건이었다. 250만원의 이자 지급이 늦을 때마다 이자는 하루에 25만원이 더 붙었다. 1년 동안은 매달 이자를 꼬박꼬박 갚았지만 병원 경영이 더 어려워지면서 A씨는 이자를 제때 지급하지 못했다. 이씨는 이때마다 병원에 찾아와 온갖 행패를 부렸다. 병원문을 한 달에 1주일밖에 열지 못하는 일이 많았다고 경찰 관계자는 전했다. 급기야 2010년 12월엔 A씨의 아내를 봉고차에 태워 감금하고 신체 포기각서까지 받아냈다고 경찰은 설명했다.

    도계읍에서 호프집을 운영하던 B씨는 이씨에게서 돈을 빌렸다가 이자를 갚지 못해 시달리다 남편의 탄광 퇴직금을 이자 명목으로 고스란히 이씨에게 넘겼다. 이것도 모자라 자신이 운영하는 호프집을 넘겨주고 지난해 말 남편과 ‘야반도주’했다. 한 주민은 “도계역광장에서만 인근 11개 점포 가운데 이씨에게 돈을 빌려 ‘패가망신’한 곳이 K당구장과 H노래방, C유흥주점 등 7곳에 달한다”고 귀띔했다.

    ◆‘도계의 왕’…5년 동안 신고 한 건 없었다

    강원도 작은 폐광마을을 발칵 뒤집어 놓은 고리사채업자 이씨는 이 마을의 토박이다. 아버지는 광부였다. 중학교를 졸업한 뒤 진학하지 않았다는 게 주민들의 증언이다. 평범한 청소년 이씨가 ‘돈놀이’에 나선 것은 폭력 혐의로 교도소를 다녀온 뒤인 2008년. 그는 종잣돈 3000만원으로 시작했다. 당시는 지역경기가 그런 대로 괜찮아 연체율이 높지 않아 이씨의 사업은 잘 굴러갔다. 그때까지만 해도 100만원을 빌려주고 10일 만에 10만원의 이자를 챙기는 소액 돈놀이 수준이었다.

    마을 주민들은 이씨가 처음부터 그렇게 “악랄하지는 않았다”고 증언했다. 2008년 금융위기 여파로 강원도 작은 마을의 경기가 얼어붙어 연체율이 높아지면서 지역 토박이인 그는 악랄한 사채업자로 변해갔다. 자금난을 겪던 이씨가 수하에 온몸에 문신을 한 ‘직원’ 5명을 고용한 것도 이 시점이었다. 돈을 받아내는 수법도 협박과 감금 등으로 변했다. 그러면서 그는 ‘도계의 왕’으로 자리잡아갔다.

    이 때문에 마을 주민들은 이씨를 경찰에 신고하는 것은 꿈도 못 꿨다. 지난 1월 무허가 대부업을 하던 이씨가 경찰에 적발됐을 당시 벌금 200만원에 풀려나는 것을 본 한 상인은 ‘이씨처럼 영업해도 경찰에 잡혀가지 않는구나’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실제로 삼척경찰서 도계지구대에 이씨를 영업방해나 폭력 등으로 신고한 사례는 단 한 건도 없었다. 황 팀장은 “도계 상인들은 대부분 ‘고리사채’의 의미도 제대로 모르고, 이자가 늘어 자신이 얼마를 갚아야 하는지도 모르는 사람이 대부분이었다”고 안타까워했다.

    ◆폐광으로 인한 생활고가 한 원인

    전체 주민 2%가 고리 사채를 쓸 만큼 도계읍 피해가 심각했던 이유는 지역경제 위축으로 빚이 늘어나자 상인들이 사채를 끌어다 쓴 게 직접적 원인이었다. 한창 잘나갈 때 소비 습관을 고치지 못해 ‘브랜드’ 의류만 고집하는 등 일부 주민들도 사채의 덫에 걸려들었다.

    도계읍은 1980년대 ‘광부 월급날엔 개(犬)도 만원짜리 지폐를 물고 다닌다’는 말이 돌 정도로 지역 경제가 좋았던 강원도의 대표적 탄광마을이었다. 한때 삼척군청을 유치하려는 운동을 펼 정도로 인구와 경제의 중심지였던 이곳은 1989년 석탄산업합리화 정책 이후 인구가 감소했고 지역경제도 동반 침체됐다. 5만명이 넘던 인구는 그새 1만3000명으로 줄었다. 지난달 기준으로 탄광에서 일하고 있는 사람은 1600여명에 불과했다. 탄광이 한창 번성할 때의 10분의 1이 채 안 된다. 사람이 넘쳐나던 마을은 20여년 만에 폐광마을로 쇠락했다.

    지역경기가 급속히 위축되면서 생활고에 시달리는 주민도 늘어났다. 도계역 인근 상가는 비어 있는 곳이 많았다. 만나본 대부분의 상인은 매출이 5년 전에 비해 반토막났다고 아우성이었다. 도계읍사무소 관계자는 “탄광이 잘나갈 때를 생각하고 주민들의 씀씀이가 다른 지역보다 큰 편”이라며 “마을에서 도박판도 심심찮게 벌어지는 것으로 안다”고 씁쓸해했다.

    일부 주민들은 이곳을 관할하는 삼척경찰서 도계지구대의 무관심도 한 원인이라고 지적했다. 경찰 관계자는 “강력 사건 하나 없는 조용한 마을에 이씨 같은 사람이 있을 줄은 상상도 못했다”고 변명했다.

    이 사건을 수사 중인 황 팀장은 “두 달 동안 250여명의 피해자 중 진술을 받은 것은 30여건에 불과하다”며 “이씨가 출소 뒤 보복할 것이라는 막연한 두려움 때문에 오히려 수사가 제대로 진행이 안 된다”고 협조를 당부했다.

    삼척=김우섭 기자 duter@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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