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한미군에게 불법연행된 한국 민간인들에게 수갑이 채워진 상황을 경찰이 임의로 연장한 게 뒤늦게 드러나면서 논란이 일고 있다. 당시 출동한 경찰이 격앙된 현장 분위기를 고려해 150m 떨어진 곳으로 이동해 수갑을 풀어주자고 미군 측에 제안했던 것.

경찰청 관계자는 9일 기자들과 만나 “112신고를 받고 현장에 도착한 경찰이 상황을 진정시킨 뒤 풀어주려고 150m 이동했다”며 “당시 시민 30~40명이 미군을 둘러싸고 욕을 하면서 항의하고 있어서 미군도 위축된 상황이라 현장에서 바로 수갑을 풀어주지 못했다”고 말했다.

양모씨 등 민간인 3명은 지난 5일 오후 경기 평택시 송탄의 주한미군공군기지(K-55) 인근에서 주차 문제로 실랑이를 벌이다 미군 헌병대 7명에게 수갑이 채워진 채 불법연행됐다. 경찰청에 따르면 양씨 등이 끌려가는 것을 지켜보던 한 시민이 112에 신고한 시각은 이날 오후 8시36분.

송탄파출소 소속 경찰 4명이 오후 8시39분께 현장에 도착했지만 민간인들을 인계 받은 시각은 오후 9시2분이었다. 현행 한미주둔군지위협정(SOFA)에 따르면 미군 헌병이 위급상황시 한국 민간인을 연행할 수 있지만 한국 경찰관이 오면 즉시 인계해야 한다고 경찰은 전했다.

이 관계자는 인계 시점이 20여분이나 지체된 이유에 대해 “현장에 출동한 경찰들이 (수갑을 찬 민간인을) 당장 풀어줄 경우 불상사가 일어날지도 모른다고 판단, 150m 이동해서 풀어주느라 그렇게 됐다”며 “물리력을 행사해서라도 민간인들의 신병을 인도 받는 게 맞지 않느냐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조금 시간이 걸리더라도 물리력을 행사하지 않는 게 맞지 않겠냐는 게 당시 현장 경찰들의 판단이었던 것 같다”고 설명했다.

경찰이 소극적으로 대응한 게 아니냐는 논란이 일고 있는 가운데 김기용 경찰청장도 이날 오전 기자간담회에서 “미군이 한국인을 끌고 간다고 해서 (무조건) 불법이라고 판단할 상황은 아니었다”고 발언, 논란에 불을 지폈다. 김 청장은 “한국인인지 주한미군에 고용된 군속(軍屬)인지 여부를 판단할 여지도 있어야 하지 않겠느냐”며 “(당시 끌려가던 민간인이) 군속이거나 미군과 관련된 인물이었다면 적법한 사건이기 때문에 우리 쪽에서 불법이라고 단언할 만한 사건은 아니었다”고 말하기도 했다.

김 청장의 말처럼 현행 SOFA 규정에 따르면 미국 국적을 지닌 민간인 군속(軍屬)에 대한 사법 처리 여부는 우리 정부가 관여할 수 없다. 그러나 원론적인 얘기더라도 성난 민심을 고려한다면 치안 총수로서 부적절한 발언이 아니냐는 게 비판론의 핵심이다.

김선주 기자 sak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