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산 둔갑 '사기 수출' 실태…포장만 살짝 바꿔 '국적세탁'…대부분 중국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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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기모터·와이어로프 등 품목 다양…수법도 교묘
관세 철폐된 품목 '유혹'…원산지 증명까지 교체
관세 철폐된 품목 '유혹'…원산지 증명까지 교체
자유무역협정(FTA) 체결 국가가 늘면서 중국산을 한국산으로 바꿔 수출하는 이른바 ‘국적 세탁’ 기법과 품목이 다양해지고 있다. 과거 가격 차이만을 노릴 때는 상대적으로 손쉽게 국적을 바꿔치기 할 수 있는 생필품 등에 집중됐지만 FTA 확대 이후에는 건설용 중장비 부품이나 기계 부품 등으로 번지고 있다.
진운용 관세청 조사감시국 사무관은 “수출업체들이 FTA로 관세가 낮아지거나 철폐된 품목은 낮아진 관세만큼 이득을 볼 수 있기 때문에 국적 변경의 유혹에 쉽게 빠져들고 있다”고 말했다.
○교묘해진 수법
지난해까지 국산으로 위장해 수출한 품목은 의류 손톱깎이 못 등 생활용품과 인삼 황새치 등 농수산식품이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작년부터 전기모터, 와이어로프, 플랜지(공업용 관 이음 접속 부품), 체인기어 등 공업용 부품의 국산 가장 수출이 늘어나는 추세다.
수법도 교묘해지고 있다. 과거에는 주로 포장만 바꾸는 게 대부분이었지만 최근에는 국내에서 안전검사 등과 같은 단순 공정을 거쳐 국산으로 탈바꿈시키기도 한다. 중국산 플랜지 6만5538개를 저가에 수입한 뒤 국내 공장에서 원산지 변경에 해당하지 않는 단순 가공을 통해 한국산으로 둔갑시킨 사례가 대표적이다.
원산지 증명서까지 발급받는 경우도 있었다. 올초 중국산 전기모터 85만6754개(시가 98억원 상당)를 수입한 업체는 국내 공장에서 외관검사, 안전성 검사 등 원산지가 변경되지 않는 단순 확인 작업을 거쳐 원산지를 한국으로 바꿨다. 이 회사는 대한상공회의소에서 국산 원산지 증명서까지 발급받아 이집트에 수출하려다 세관에 덜미가 잡혔다.
지난해 10월에는 중국산 다이아몬드 커터날을 무려 241억원어치나 수입해 한국산으로 바꾼 뒤 유럽연합(EU) 지역에 수출하려는 시도도 있었다. 이 업체는 다이아몬드 커터날에 원산지를 표시한 부분을 제거하고 일일이 ‘Made In Korea’를 새겨 넣는 치밀함을 보이기도 했다.
○FTA 효과 반감 우려
가장 수출이 중국산 제품에 몰리는 이유는 각종 부품이나 기계용품 등을 대량으로 값싸게 구매할 수 있는 나라가 중국밖에 없기 때문이다. 중국산 제품 중 한국을 거쳐 수출하는 품목이 유독 많은 것도 중요한 이유다.
관세청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환적화물(한국을 거쳐 다른 나라로 가는 화물) 물량 5261만 중 중국에서 온 화물은 1791만으로 전체의 34.0%를 차지했다. 이 가운데 21.7%인 388만은 미국으로, 9.7%인 174만은 일본, 115만은 EU 지역으로 나갔다.
이 중에는 단순히 포장 등만 재가공하는 경우도 있지만 모양을 바꾸거나 부품을 활용해 새로운 물건을 만드는 경우도 있다. 포장만 바꾸거나 안전성 검사만 한 경우 국적을 바꿀 수 없지만 중국에서 오는 화물이 워낙 많은 데다 품목이 다양해 적발이 쉽지 않은 실정이다. 관세청 관계자는 “불법적으로 국적을 변경한 사례가 늘어나면 결과적으로 정직하게 수출하는 기업들이 피해를 본다”며 “실제 최근 한국산 제품의 통관을 보류하거나 조사기간을 연장하는 나라들도 생기고 있다”고 전했다.
임원기 기자 wonki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