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아침의 인물] 전쟁 속에서 핀 표현주의 거장 샤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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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와 문화의 가교 한경
파블로 피카소와 함께 20세기 최고의 화가로 꼽히는 마르크 샤갈은 러시아 태생의 프랑스 화가다. 표현주의·초현실주의 화풍을 대표하는 샤갈의 어린 시절은 그리 유복하지 않았다. 1887년 러시아 비테브스크의 유대인 빈민촌에서 태어나 동네 미술학원에서 그림을 배웠다.
샤갈이 미술에 눈을 뜬 것은 스무 살때 상트페테르부르크 황실미술학교에 들어가면서부터다. 3년간 미술 공부에 몰두하며 그만의 화풍을 만들어 갔다. 1910년부터 4년간의 프랑스 유학은 그의 그림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피카소와 큐비즘 영향 속에서 환상을 주제로 한 작품으로 명성을 높여갔다.
1914년 세계 1차대전이 일어나자 러시아로 돌아가 연인 벨라 로젠펠트와 결혼한 샤걀은 1923년 파리로 다시 온 후 귀화했다. 1941년엔 나치의 탄압을 피해 미국 뉴욕에 정착했다. 샤갈은 전쟁을 피해 옮겨다니면서도 파리 모스크바 뉴욕 등에서 회고전을 열며 거장으로 자리잡아 갔다. 그는 도자기, 판화, 무대연출, 벽화에도 정통했다. 예술의 깊이가 얕다는 지적도 받았지만, 샤갈 작품의 가치는 다양성에 있다는 게 현대미술계의 중론이다.
1985년 프랑스에서 98세의 나이로 눈을 감기까지 그의 작품에 ‘혼돈’은 없었다. 인간 내면의 소망을 화폭에 담았을 뿐이다. ‘붓을 든 자화상’ ‘탄생’ ‘나와 마을’ 등의 작품이 피카소, 고흐 등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까닭이다. 샤갈은 125년 전 오늘 태어났다.
백승현 기자 argo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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