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단방북한 지 104일 만인 5일 판문점을 통해 돌아온 조국통일범민족연합남측본부 부의장 노수희 씨(68)가 공안당국에 긴급체포됐다. 노씨는 지난 3월24일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의 사망 100일 추모행사에 참석하겠다며 밀입북한 뒤 100여일 넘게 북한에 머무르며 북한 당국을 찬양한 혐의(국가보안법 위반)를 받고 있다.
노씨는 이날 오후 3시께 판문점 군사분계선(MDL)을 통해 남쪽으로 넘어왔다. MDL 남쪽에 대기하던 통일부 연락관이 노씨의 신병을 경찰에 인계했다. 공안당국은 파주경찰서에서 방북 경위 및 북한에서의 행적을 조사한 뒤 6일쯤 구속영장을 신청할 예정이다. 경찰은 이날 오전 범민련 사무실, 노씨의 자택, 범민련 사무처장 원모씨의 자택을 동시에 압수수색하면서 수사에 나섰다.

◆“김정일 서거, 민족 최대 슬픔” 北찬양

조선중앙통신 등 북한 언론매체에 따르면 노씨는 김 위원장의 시신이 안치된 금수산태양궁전에 ‘위대한 영도자 김정일 동지는 영원히 우리와 함께 계신다’라고 적힌 조화를 바쳤다. 김일성 주석의 생가인 만경대 방명록에는 “국상(國喪) 중에도 반인륜적 만행을 자행한 이명박정권 대신 정중히 사죄드립니다”고 적었다. 김 주석의 100회 생일을 기념해 지난 4월 평양에서 열린 대규모 군(軍) 열병식에도 참석했다.

지난 3일에는 조선중앙통신과의 인터뷰에서 “김 위원장의 서거는 우리 민족의 가장 큰 상실이며 최대의 슬픔이었다. 김 위원장은 남북 수뇌상봉을 실현시켜 6·15공동선언과 10·4선언을 마련해 준 민족의 어버이”라고 치켜세웠다.

공안당국은 노씨의 행위가 국가보안법 제6조(잠입·탈출) 및 제7조(찬양·고무 등) 위반에 해당한다고 판단하고 있다. 국가보안법에 따르면 반국가단체의 지배 아래 있는 지역에 잠입·탈출한 자는 10년 이하의 징역에 처하며, 반국가단체를 찬양·고무·선전하면 7년 이하 징역에 각각 처한다.

박수진 통일부 부대변인이 “노씨가 밀입국해 정부를 비방하고 북한을 찬양한 행위는 남북교류협력법을 넘어선 중대한 사안이다. 관련법에 따라 엄정히 조치할 것”이라고 경고한 것도 이 때문이다.

공안 당국에 따르면 노씨는 30대 후반인 1980년대 초반부터 서울 종로구 세운상가에서 노점상 생활을 했다. 1980년대 후반 전국노점상연합회 간부를 맡으면서 노동운동에 뛰어들었다.

◆“빨갱이 입국불허” 보수단체 반발

판문점 일대에는 이날 노씨의 이적 행위를 비판하는 보수단체가 집결하면서 팽팽한 긴장감이 조성됐다. 대한민국어버이연합 등 보수단체 회원들은 판문점 인근에서 노씨와 김정은 북한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의 사진이 붙은 인형을 불태웠다.

대한민국상이군경회 회원들은 ‘빨갱이 노수희 입국불허’라고 적힌 팻말을 들고 서울 영등포동 범민련 사무실 진입을 시도하다 경찰과 충돌하기도 했다. 1995년 결성된 범민련 남측본부는 남·북·해외를 아우르는 통일운동을 전개하겠다는 명목으로 매년 북한에서 열리는 8·15범민족통일대축전에 참가를 강행, 물의를 빚어왔던 이적단체다.

나창순 고문과 서원철 대표가 1999년 8월 평양대축전에 참가하겠다며 무단방북한 적이 있다. 김양무 부의장도 같은 해 12월 신병치료를 핑계로 방북을 신청했지만 당국이 불허했다. 이규재 의장 등 범민련 간부 3명은 2009년 6월 북한의 지령을 수행한 혐의로 구속 기소됐다.

한편 노씨처럼 무단방북했다가 판문점을 통해 귀환한 남측 인사는 1989년 임수경 씨·문규현 신부, 1995년 안호상·김선적 씨, 박용길 장로, 1998년 황선 씨, 2010년 한상렬 목사 등이 있다.

김선주/조수영 기자 sak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