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상증자 가뭄 리먼사태 당시보다 심각

국내 기업들이 유럽발 금융위기의 여파로 주식시장에서 자금을 조달하는 데 큰 차질을 빚고 있다.

장내 주식을 새로 발행해 유통시키는 기업공개(IPO) 시장은 올해 상반기에 극심한 침체를 겪었다.

기존 상장사의 유상증자 규모도 리먼 사태 당시를 연상케 할 정도로 급감했다.

세계 경기전망이 불투명한 탓에 이런 추세는 하반기에도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정부는 중소기업을 상대로 한 정책 자금을 늘리는 등 대책을 마련하고 있다.

◇세계적인 불황…IPO 시장 고사 지경
IPO 시장이 위축된 것은 전 세계적인 현상이다.

5일 금융감독원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국내 IPO 시장 규모는 리먼 사태 당시인 2008년의 8천70억원 규모로 감소했다.

이후 2009년 3조3천868억원 규모로 늘며 회복세를 탔다.

특히 2010년에는 삼성생명, 대한생명 등 대형 보험회사들의 기업공개로 10조원을 돌파했다.

그러나 지난해 4조2천558억 규모로 줄었고, 올해는 상반기까지 4천589억원 규모에 그쳐 IPO 시장이 완전히 쪼그라들었다.

공모 건수도 2010년 96건, 2011년 73건이었으나 올해는 상반기까지 10건에 그쳤다.

하반기에 선전해도 리먼 사태가 터진 2008년 한해 44건에 못 미칠 가능성이 크다.

유상증자 내역을 봐도 사정이 비슷하다.

지난해 한 해의 유상증자 규모는 10조4천633억원(97건)이었으나, 올해는 5월까지 5천440억원(21건)에 불과했다.

2008년에는 한 해 동안 4조4천633억원(227건)을 기록했다.

당시와 비교해도 올해 성적이 아직 한참 모자라다.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세계 IPO 시장은 올해 상반기 532억 달러 규모로 작년 같은 기간보다 44% 급감했다.

페이스북 상장을 제외하면 글로벌 IPO 시장이 10년 전보다 못하다는 분석도 있다.

2008년 세계 IPO 시장 규모는 960억 달러 수준이었으며, 이후 2010년 2천850억 달러 규모까지 급증했다.

◇"일단 지켜보자" 상장 일정 늦추는 기업들
최근 증시 상장이나 유상증자가 급감한 것은 기업들이 침체된 시장에서 몸을 사리고 있기 때문이다.

코스닥시장 상장을 추진했던 중국 제지회사 차이나그린피앤피는 제출한 상장신고서를 올해 1월 중순에 돌연 철회했다.

시황이 나쁜 데다 외국기업이라 저평가될 것을 우려했기 때문이다.

올해 IPO시장의 최대어로 꼽혔던 현대오일뱅크도 지난달 중순 유가증권시장 상장을 무기한 연기했다.

모회사인 현대중공업이 공모 과정에서 제값을 받기 어려울 것이라 판단한 것으로 알려졌다.

현대오일뱅크의 올해 1분기 영업이익은 1천449억원으로 작년 같은 기간에 비해 40% 가까이 감소했다.

세계 경기둔화로 수요가 줄어 국제원유 가격이 급락했기 때문이다.

거래소 관계자는 "올해 초 상장 예비심사를 청구할 것으로 예상했던 회사가 40곳이 넘었지만, 상당수가 일단 상반기 실적을 확인하겠다며 상장 일정을 멈췄다"고 전했다.

한국투자증권 기업금융본부 관계자는 "유럽발 금융위기 여파로 IPO를 추진하던 기업들의 경영실적이 정체하거나 감소해서 추진 시기를 연기하고 있다.

특히 IT업체들이 많아 영향이 더 컸다"고 설명했다.

올해 들어 새로 상장한 회사들마저 대부분 고전하고 있다.

사조씨푸드는 상장 첫날인 지난달 29일 10.9%나 급락했다.

전날 종가가 9천210원으로 여전히 공모가 1만600원을 밑돌고 있다.

코스닥시장의 동아팜텍, 뉴로스, 비아트론 등도 주가가 공모가에 못 미친다.

◇증시 전망 `깜깜'…IPO 시장 전망도 마찬가지
올해 하반기에도 기업들이 주식시장에서 돈 구하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지배적인 전망이다.

한국상장회사협의회 관계자는 "경기나 증시 상황이 좋아진다는 전망이 있어야 IPO 시기를 저울질할 텐데, 전망이 여전히 어둡다"고 진단했다.

한 증권사 직원도 "회사들의 올해 경영실적이 불확실하기 때문에 하반기에도 IPO 시장이 살아나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내다봤다.

정부는 주식 발행을 통한 기업의 직접 금융이 상당 기간 어려움을 겪을 것으로 보고 대책 마련에 분주하다.

최수규 중소기업청 중소기업정책국장은 "이번 위기가 당분간 계속될 것으로 예상돼 정부에서 적극적으로 정책 자금을 증액하고 있다"고 밝혔다.

반면에 상반기보다는 하반기에 사정이 나아질 것이라는 견해도 있었다.

김남규 거래소 코스닥시장본부 상장심사1팀장은 "상장을 고려했다가 잠시 중단한 회사들이 많다.

그동안 상장심사 청구가 워낙 적었기 때문에 하반기에는 비교적 증가할 것으로 예상한다"고 말했다.

조인직 대우증권 IPO부 팀장은 "올해 하반기에 IT와 소비재 부품 등을 중심으로 업황이 개선되면 공모시장 분위기도 좋아질 수 있다"고 내다봤다.

(서울연합뉴스) 강종훈 한지훈 기자 double@yna.co.kr hanjh@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