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 낡은 전봇대 탓에 홍역을 치르고 있다.

지난달 29일(현지시간) 워싱턴DC 북동부지역 300만가구에 전기 공급이 끊긴 것은 폭풍으로 주택가 나무들이 쓰러지면서 전봇대에 연결된 전선을 덮친 게 주된 원인이다. 워싱턴DC, 메릴랜드·버지니아주 등 특히 나무가 많은 지역은 나흘이 지난 3일에도 107만가구가 찜통 더위에 갇혀 있다.

문제는 전선을 땅 속에 묻기 전에는 지금과 같은 정전 사태가 언제든지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이다. 주정부와 전력회사들은 오래전부터 전선 매설을 검토했지만 비용 문제가 발목을 잡고 있다.

일렉트릭파워리서치에 따르면 전선 매설 비용은 1마일(약 1.6㎞)당 500만~1500만달러로 추정된다. 워싱턴DC의 경우 일부 전선을 매설했지만 도시 전체의 모든 전선을 땅 속에 묻으려면 58억달러가량이 든다. 결국 시민들이 매달 107달러의 요금을 더 내야 한다는 분석이다. 워싱턴포스트는 “매설 비용은 전기요금 인상으로 연결돼 당국이 쉽게 결정하지 못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2003년 겨울 폭풍으로 200만가구의 정전 사태를 경험했던 노스캐롤라이나주는 당시 공공전기위원회 차원에서 모든 전선을 매설하는 방안을 검토했다. 하지만 공사기간 25년에 410억달러의 비용이 들어간다는 계산서가 나오자 ‘비경제적’이라는 이유로 포기했다.

그나마 정전 사태를 잘 참아주는 시민들의 인내심 덕분에 낡은 인프라를 유지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그레고리 리드 세인트피터즈버그대 전기공학과 교수는 “전기 공급 인프라가 대부분 1980년 이전에 만들어져 노후단계에 접어들었다”며 “배전 네트워크의 현대화에 투자해야 한다”고 말했다. 미국 보수 언론인 데이비드 프럼은 이날 CNN 기고를 통해 “정전은 불가피한 것이 아니다”며 “독일에선 폭풍이 불고 나무가 쓰러져도 불이 꺼지지 않는다”고 했다.

워싱턴=장진모 특파원 j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