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경제개발 경험을 개발도상국에 전파하는 ‘개발 경험 공유 프로그램(KSP)’이 세계은행 차원에서 적극 추진될 전망이다. 김용 세계은행 총재는 2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DC 세계은행 본부에서 첫 기자간담회를 갖고 “세계은행은 경제개발에 관한 세계 최고의 교육기관이자 경제개발 지식을 공유하는 기관”이라며 이 같은 뜻을 내비쳤다.

김 총재는 “(6·25전쟁 후) 폐허로 변해 당시에는 개발이 불가능해 보였던 한국이 지금 어떻게 변했는지 보라”며 “나는 어떤 나라든지 (한국과 같은) 경제개발 과정을 거칠 수 있다고 낙관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우리의 꿈은 빈곤을 퇴치하는 것”이라며 “국제 공동체가 자원과 경험, 지식을 효율적으로 공유한다면 빈곤을 줄이거나 중산층을 더욱 두텁게 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워싱턴의 한 외교 소식통은 “김 총재가 세계은행 총재로 내정된 후 한국 정부의 KSP에 대한 세계은행의 관심이 크게 높아졌고 관련 자료 요청도 많아졌다”고 전했다. 세계은행 관계자도 “세계은행과 한국이 공동으로 KSP를 개도국에 전파하는 방안을 논의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김 총재는 세계은행의 역할론과 관련, 개도국의 성장이 최우선 과제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 그는 “유럽의 경제위기를 신중하게 지켜보고 있지만 세계은행의 주된 임무는 개도국을 경제위기로부터 보호하는 것”이라며 “글로벌 경제가 더 악화될 경우 이머징마켓(신흥국)에 추가 지원할 수 있을 정도의 튼튼한 재원을 확보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김 총재는 “지금처럼 세계경제의 변동성이 심한 시기에 개도국이 빈국으로 떨어지지 않도록 안전망을 구축하는 것도 중요한 과제”라고 덧붙였다. 이를 위해 “세계은행은 금융위기 이후에도 회원국에 대한 대출을 계속 확대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김 총재는 이날 ‘소통 총재’로서의 면모를 보였다. 오전 9시 정각에 첫 출근하면서 취재진을 향해 짧은 소감과 취임사를 했다. 오전엔 직원들과 라운드테이블 미팅을 가졌다. 40여분간 문답식으로 진행된 간담회에서 김 총재는 10분 정도 말한 뒤 나머지 시간을 직원들의 이야기를 듣는 데 할애했다.

김 총재는 직원 간담회를 마친 후 기자간담회 장소로 이동해 세계 언론과 소통하는 시간도 가졌다. 유로존 재정위기국에 대한 자금 지원 여부를 묻는 질문에 “세계은행은 소득이 높은 나라에 대규모 금융 지원을 논의하지 않는다”고 선을 그었다. 다만 “그리스와 같은 위기 국가에 인프라 투자나 빈곤 퇴치와 같은 기술적 지원은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1959년 서울에서 태어난 김 총재는 다섯 살 때 부모를 따라 미국으로 이민을 갔다. 하버드대에서 의학박사 학위를 받은 후 의대 교수로 재직하면서 개도국의 결핵과 에이즈 퇴치 사업 등에 헌신했다. 2009년 7월에는 아시아계로선 처음으로 미국 다트머스대 총장 자리에 올랐다.

워싱턴=장진모 특파원 j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