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감독원이 ‘테마주, 주가 급등에도 개인투자자 손실 크다’는 보도자료를 준비 중이던 지난 21일.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는 정치 테마주 시세 조종세력에 대한 판결이 나왔다. 대통령 선거 후보들과 관련해 허위사실 유포로 시세를 조종한 박모씨 등 5명에 대한 선고였다.

박씨 등은 지난해부터 올초까지 인터넷 주식 사이트에 정치 테마주 17개 종목과 관련해 5700여개의 근거없는 글을 올렸다. 노인용 기저귀를 생산품목 가운데 하나로 둔 모나리자도 이들이 띄운 정치 테마주였다. 유력 대선주자들이 노인복지와 치매에 관심을 갖고 있다는 이유였다. “‘모나리자’를 노래한 가수 조용필이 모나리자에 투자하고 있다”는 거짓 설명도 보탰다.

박씨 등은 또 콘돔업체 유니더스를 박근혜 새누리당 대선 후보와 관련한 테마주로 부각시켰다. 박 후보가 과거 국회에서 “에이즈 치료에 대한 준비가 있어야 한다”고 한 연설이 단초였다. 박씨 등은 ‘치료’를 ‘예방’으로 바꿔 박 후보의 연설 내용을 인터넷에 옮긴 뒤 “박 후보가 지원하는 수혜주”라고 거짓 포장했다. 이런 식으로 주가를 끌어올린 뒤 친인척 등 명의의 계좌로 미리 사놓은 주식을 팔아 시세차익을 챙겼다. 이들이 얻은 부당이득은 50억원에 달했다.

법원은 선고 당일 박씨 등에게 “질 낮은 정치 풍문을 퍼뜨려 많은 사람들에게 해를 끼친 것을 반성하라”고 훈계하기까지 했다. 그러나 정작 선고는 주범인 박씨가 벌금 3000만원, 다른 공범들은 각각 500만~1000만원에 그쳤다. 범죄이익을 몰수하거나 추징하는 내용은 없었다. 벌금을 제하고도 49억여원을 번 ‘남는 장사’를 만들어준 셈이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이런 솜방망이 처벌이 나오니 정치 테마주가 활개를 치는 것 아니겠느냐”고 탄식했다.

금감원에 따르면 개인투자자들은 대표 정치테마주 35개 종목에서 지난해 6월1일부터 지난 5월31일까지 1년 동안 총 1조5494억원의 손실을 입었다. 최근 들어서는 경제민주화, 일자리 정책 관련주라는 이유로 16개 정치 테마주가 새로 뜨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이런 테마주가 부상하는 것은 이를 통해 이득을 얻으려는 ‘세력의 장난’이 한 원인으로 지적된다. 법원의 솜방망이 처벌이 이런 장난질을 부추긴다면 지나친 얘기일까.

임도원 증권부 기자 van7691@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