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9일 오전, 서울광장 인근의 한 호텔 프런트에서 투숙객으로 보이는 한 외국인과 호텔직원 사이에 가벼운 실랑이가 벌어졌다. 외국인은 “전날 확성기를 동원해 몇 시간 동안 이어진 집회 소음 탓에 제대로 쉴 수 없었다”고 했다. 그는 다음날 일어나자마자 호텔 측에 환불을 요구했다. 호텔 직원들의 진심어린 설득에도 그는 끝내 뜻을 굽히지 않았다. 이 호텔 관계자는 “도심집회가 열린 다음날이면 호텔 방을 반대편으로 바꿔달라거나, 환불을 요구하는 손님들이 종종 있다”며 어려움을 하소연했다.

서울광장과 청계광장 등 소위 ‘집회 명당’ 인근 호텔 투숙객이나 회사원들이 호소하는 소음집회 피해가 심각하다. 건설노조 집회가 열린 28일에도 경찰과 인근 건물 관리사무실에는 “시끄러워서 일을 할 수가 없다”는 항의전화가 빗발쳤다. 서울 남대문경찰서가 이날 집회현장에서 측정한 평균 소음은 기차가 바로 옆에서 지나갈 때 내는 소음과 맞먹는 82데시벨(dB). 법적으로 허용되는 소음 기준인 80dB을 넘어선 명백한 ‘불법행위’였다.

하지만 현장 출동해 소음측정기까지 들이민 경찰의 다음 행동은 선뜻 이해하기 힘들었다. ‘단지 소음 때문에 1만명 가까이 참여한 집회를 해산시킬 수는 없다’는 이유를 들어 불법집회 엄중대처를 거듭 밝혀온 경찰이 눈앞에서 벌어진 ‘소음집회’를 못 본 척한 것이다.

미국이나 영국 등 선진국에서의 ‘무(無)관용주의’를 거론하지 않더라도 우리나라 대법원도 2004년 “허가 받은 적법한 집회나 시위라 해도 확성기를 과도하게 사용해 인근 상인들에게 피해를 줬다면 업무방해로 처벌할 수 있다”고 판결했다. 경찰청에 따르면 집회 시위와 관련된 민원의 약 85%가 소음 피해다. 그러나 2004년 이후 소음 때문에 처벌받은 사람은 단 29명뿐이다.

집회·시위 과정에서의 소음 발생은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 하지만 그 마지노선은 시민들의 인내로 제한된다. 법적으로 집회의 소음기준치를 정해놓은 것도 이 때문이다. 경찰이 지금처럼 도를 넘는 소음 집회에 관용을 베푸는 한 “도시 한복판에서 이런 집회가 일어나고, 경찰이 지켜만 보고 있는 상황을 이해할 수 없다”며 호텔을 박차고 나가는 외국인을 막을 길은 없어보인다.

김우섭 지식사회부 기자 dute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