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29일 밀실, 졸속 추진 논란을 일으켰던 한·일 군사정보포괄보호협정(GSOMIA) 체결을 전격 연기했다. 이날 오후 4시 일본 도쿄에서 신각수 주일대사와 겐바 고이치로 일본 외무상 간 서명식을 가질 예정이었으나 불과 서명 1시간을 남긴 채 일본에 연기를 통보했고 연기 사실도 10분 전에 발표, 외교적 망신을 자초했다는 비판을 피할 수 없게 됐다.

정부는 앞으로 정치권과 협의를 거친 후 서명을 다시 추진한다는 방침이나 새누리당마저 비판적 기류가 적지 않아 쉽지 않을 전망이다.

◆서명 1시간 전 일본에 통보

외교통상부는 이날 오전까지만 해도 서명 일정에 변함이 없다고 했다. 오전 11시30분에는 서명을 전제로 한 사전 보도자료까지 냈다. 그렇지만 전날 정보보호협정에 찬성하며 정부를 두둔했던 새누리당마저 돌아서면서 분위기가 확 바뀌었다. 이한구 원내대표는 오후 2시30분께 김성환 외교부 장관에게 직접 전화를 걸어 정보보호협정의 유예를 요구했다.

청와대 관계자는 “여당의 뜻을 무시하고 그대로 서명을 추진했다간 정권 말 당정 간 심각한 갈등 기류가 형성될 수 있고, 이는 이명박 대통령에게 큰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고 전했다.

외교부 관계자는 “국가 안보에 도움이 된다고 판단해 협정을 추진했다”며 “그러기 위해선 국민의 지지를 받아야 하지만 정치권에서 반대의견을 제시해 재고할 수밖에 없었다”고 설명했다. 그는 “오늘(29일) 오후 3시께 일본에 서명 연기가 불가피하다는 점을 통보했고, 일본은 ‘충분히 이해를 한다’고 했다”고 말했다. 정보보호협정 추진 과정을 보면 정부 내에서도 그 방식에 대해 비판 목소리가 적지 않다. 정부의 한 관계자는 “수년 전부터 추진해오던 사안을 떳떳하게 공개적으로 했으면 큰 문제가 없었을 텐데 ‘쉬쉬’하는 바람에 괜한 오해를 샀다”고 했다.

국방부는 정치권의 설득 작업을 거친 후 신중하게 처리하자고 주장했지만 청와대가 반대하면서 협상 주체가 국방부에서 외교부로 바뀐 것으로 전해졌다.

◆박근혜 의중 담긴 듯

새누리당이 태도를 바꾼 것은 여론에 대한 부담 때문이다. 대선을 앞둔 상황에서 자칫 ‘새누리당=친일’이라는 이미지가 덧씌워질 수 있다. 박근혜 전비상대책위원장의 의중이 담긴 것 아니냐는 관측도 나왔다.

새누리당은 국회 개원 이후 이 문제를 외교통상통일위원회와 국방위원회에서 논의한다는 방침이다. 진영 정책위의장은 “국민의 동의를 얻은 뒤 체결 여부를 결정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 친박계 의원은 “민주통합당 등 야당이 공세를 펼칠 게 뻔한 상황에서 새누리당이 정부를 마냥 옹호할 수는 없다”고 말해 국회 동의를 얻기가 쉽지 않은 상황이다.

홍영식/도병욱 기자 ysho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