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그림 앞에 서다 / 이명옥 지음 / 21세기북스 / 282쪽 / 1만5000원
영국 미술가 마크 퀸은 충격적인 방식으로 자아를 탐구하는 예술가다. 그는 자신의 피를 직접 뽑아 냉동실에 얼린 후 작품 ‘셀프’를 만든다. 자신의 머리 형상을 그대로 본뜬 뒤 그 속에 혈액을 채워넣는 방식이다. 작가가 이토록 섬뜩한 방식으로 작품을 만드는 이유는 뭘까. 자신이 누구인지 극명하게 보여주기 위해서다.
마크 퀸뿐 아니라 대다수 예술가들의 세계를 들여다보면 ‘나’를 찾기 위한 치열한 노력을 읽을 수 있다. ‘나는 누구인가’란 질문을 좇는 예술가들의 삶을 마주하면, 일상에 휩쓸려 살아가는 우리네 인생을 돌아보게 된다.
《인생, 그림 앞에 서다》는 예술 작품 76점을 통해 배우는 인생 이야기다. 저자는 “뛰어난 예술 작품에는 예술가의 삶을 주관하는 거대한 힘이 숨겨져 있기 때문에 한 인간의 직업관이나 인생관에 커다란 영향을 끼친다”고 단언한다. 예술품을 대하면서 자신 안에 존재하지만 미처 발견하지 못했던 생각이나 감정, 꿈과 욕망을 들여다보게 된다는 게 저자의 생각이다.
저자는 팝 아트의 거장 로이 리히텐슈타인에겐 ‘창조 모방’을 배우자고 말한다. 리히텐슈타인은 “만화의 진정한 목표는 의사소통”이라고 말하며 대중과 공감하는 미술을 창안하기 위해 만화의 양식과 인쇄 기법을 빌려와 순수미술에 융합했다.
그는 단순히 만화를 캔버스에 복제한 게 아니라 그간 시도하지 않았던 독특한 인쇄 기법을 차용했다. 구멍이 뚫린 알루미늄 눈금판을 캔버스에 대고 붓에 잉크를 묻혀 붓질했다. 이에 대해 앤디 워홀은 “아, 나는 왜 그런 발상을 미처 하지 못했지”라며 부러워했다고 한다. 리히텐슈타인은 ‘하늘 아래 새로운 것은 없다’ ‘모방은 창조의 어머니’란 말을 행동으로 증명했다.
‘창조 모방’을 기업마케팅에 이용해 성공한 사례도 있다. 세계적인 화장품 기업 에스티로더다. 에스티로더는 백화점 시식 코너를 보고 무료 샘플 증정 전략을 떠올렸다. 이 모방 전략은 에스티로더를 화장품 제국으로 만든 일등공신이다.
김인선 기자 indd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