맞춤 셔츠나 양복을 입는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한동안 사라졌던 맞춤 양복점을 주변에서 쉽게 볼 수 있게 됐다. 맞춤옷을 입는 이유는 생산자 중심으로 제작된 획일적 기성복보다 몸에 잘 맞아 편하고, 가격 대비 품질도 좋기 때문이다. 더구나 요즘 양복점들은 고객 정보를 데이터화하고 있어 직접 방문하지 않고 전화 한 통으로 원하는 옷을 맞출 수 있는 서비스를 제공한다.

양복점이 기존 데이터를 바탕으로 고객에게 적합한 새 제품을 먼저 제안하기도 한다. 한마디로 말하면 사용자 중심의 서비스다. 이를 가능하게 해주는 기술이 스마트그리드다.

#에너지 혁명, 스마트그리드

스마트그리드는 기존 전력망에 정보통신기술을 결합, 안정적이고 효율 높은 전력망을 구축하는 차세대 전력관리시스템이다. 수력, 화력 등의 전통적 에너지는 물론 태양광, 풍력, 신재생에너지 등의 대체 에너지를 발전원(源)으로 전력을 공급하고 관리한다. 발전-송전-배전-사용에 이르는 전 과정에 걸쳐 구축된 고도화된 시스템이라고 할 수 있다.

스마트그리드를 통해 공급자와 수요자는 서로의 정보를 교환할 수 있게 되고, 이를 통해 수요와 공급을 조절함으로써 최적화된 에너지 서비스가 가능해진다. 스마트홈, 스마트빌딩, 스마트카 및 각종 스마트 기기들과 연계될 수 있는 엄청난 파급력을 가진 에너지 융합의 근간 기술이라고 할 수 있다.

스마트그리드는 에너지 효율을 높일 수 있다는 장점으로 인해 대체에너지원 개발과 함께 전 세계 각국에서 추진 중인 친환경 정책의 핵심 사업이다. 스마트그리드 활성화를 통해 신규 일자리를 늘리고 내수 창출효과를 거둘 수 있는 것과 더불어 석유, 석탄, 원자력 등 전통적 에너지 발전소 신규 건설수요를 혁신적으로 줄이는 효과를 기대할 수도 있다. 이 분야의 세계시장 규모는 연평균 20%씩 성장, 2014년 1714억달러, 2030년에는 3조달러까지 성장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국내에서는 연간 1조5000억원, 2030년까지 총 32조원 규모로 성장 잠재력이 막대한 시장이다.

지금까지 에너지산업에서는 공급자가 정한 가격을 따를 수밖에 없는 일방적이고 수동적인 에너지 수급 모델이 당연시 돼왔다. 하지만 스마트그리드 세상에서는 사용자가 에너지 공급 상황에 대한 정보를 갖고 가장 싸게 살 수 있는 시간과 방법을 선택할 수 있다. 사용하고 남는 전력은 되팔 수도 있게 되는 등 공급자에서 사용자 중심으로 수급모델이 바뀌게 된다. 스마트그리드는 발전, 거래, 송전, 배전, 판매를 비롯해 스마트카, 스마트홈, 스마트빌딩 등 연계 가능한 산업 스펙트럼이 매우 넓은 분야다. 다양한 기업이 참여해 산업 생태계를 구성할 수 있다.


#전력과 관련한 부가가치 서비스 제공

스마트그리드 도입을 통해 실시간으로 전력수요 변동에 따른 발전량을 조절할 수 있게 됨으로써 공급자 관점에서는 에너지 효율성이 높아지고, 탄소배출량도 줄일 수 있다. 분산발전 및 전력저장장치와의 연계를 통해 에너지 이용효율도 높일 수 있다. 사용자 관점에서는 수요 기반 실시간 전력 가격제(demand response & real time price)를 통해 보다 합리적인 가격으로 전력을 사용할 수 있다.

스마트 홈 보안 서비스, 원격 전력기기 통제, 전력공급자 변경 및 전력 거래 서비스 등 경제성 및 편의성을 고려한 다양한 부가가치 서비스도 이용할 수 있다. 또 에너지시장의 가시성이 높아져 발전과 송전, 배전 등을 담당하는 공급자의 고객분석역량 제고, 자산 최적화, 전력 미터링 비용 최소화 등의 혜택을 제공할 수 있다.

글로벌 선도기업들은 철저하게 고객 니즈를 파악하고 행태를 분석함으로써 시장과 고객이 요구하는 마케팅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서비스를 제공한다. 대표적인 예가 전력 수급상황에 따라 실시간으로 가격이 변동하는 맞춤요금제 개발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글로벌 선도 기업들은 이 과정에서 철저한 시나리오 기반의 비즈니스 케이스 분석을 통해 사업 타당성을 검증하고 있다는 점이다.

철저한 사업성 검토를 통해 높은 복잡성을 지닌 스마트그리드 사업이 가진 리스크를 최소화할 수 있다. 더불어 이들은 운영모델을 표준화하는 동시에 참여 파트너를 확대하고 적극적인 인수·합병(M&A)을 통해 이 산업의 생태계를 확장하고 있다. 특히 해외 진출을 고려, 주요 글로벌 파트너를 적극적으로 발굴·관리하고 지속적으로 운영체계를 통합 및 개선하려는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다양한 글로벌 기업들의 사례

미국의 베터플레이스는 차량 무선인터넷 서비스를 기반으로 운행정보, 운행행태, 선호 충전지역 및 실시간 전력가격등을 분석하고 업데이트하는 사용자 중심 편의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또 전기차의 전력에너지 사용량에 따라 최적의 충전요금패키지를 추천해주고, 전기 배터리 수명과 유지·보수 일정을 자동적으로 관리해주기도 한다.

EDF에너지와 PSA푸조-시트로앵은 전기자동차를 충전할 때 전기차 사용자가 고유 보안키 인증을 통해 전력할인이나 세금지원 등의 정책적 지원을 받을 수 있도록 한다. 이는 스마트그리드가 근거리 비접촉식 무선통신(NFC)의 개인보안인증 및 결제, 쿠폰 및 마일리지 관리 같은 부가가치 서비스와 연계된다면 강력한 시너지를 발휘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다.

DTE에너지는 소비자 니즈 및 전력 이용행태를 면밀히 파악하고, 이를 바탕으로 최적의 서비스 및 마케팅 캠페인을 개발했다. 그 결과 DTE에너지는 최적화된 서비스와 고객접근채널로 강력한 고객 관계를 형성할 수 있게 됐다. 콜센터를 통한 다양한 캠페인을 통해 신규 고객을 발굴하고, 기존 고객과의 관계를 더욱 강화하는 성과를 얻었다.

#스마트그리드 걸림돌과 해결방향

스마트그리드가 줄 수 있는 다양한 혜택과 기회를 소비자가 충분히 느끼고 경험할 수 있으려면 다음과 같은 몇 가지 제약조건이 우선적으로 해결돼야 한다.

첫째, 스마트그리드 서비스에 대한 사용자의 수용 범위와 수준에 대한 불확실성이 여전하다. 스마트홈, 스마트카 관련 서비스를 이용하기 위한 기초 설비나 기기 구입 등의 총소유비용(TCO:total cost of ownership)이 높아 개인이 분담해야 하는 비용이 부담스럽고, 개인 데이터 보안의 우려도 있다. 따라서 부가가치 서비스의 다양화와 함께 정부 정책 및 스마트그리드 관련 기업의 인센티브 제도 활성화를 통해 효과적인 대중화 유도가 필요하다.

둘째, 스마트그리드로의 혁신적 변화를 위한 관련 기업들의 공감대가 부족하다. 아직까지 스마트그리드 기반 부가가치 서비스에 대한 기술, 재무, 마케팅 등 전방위적 관점의 서비스 운영모델이 불명확해 다양한 기업들의 참여 수준이 미미하고, 그 결과 상용화 수준이 여전히 낮다. 스마트그리드 서비스가 기업들에 줄 수 있는 가치를 명확히 해 참여자를 늘리고 산업 생태계를 확장해야 한다. 또 최적의 서비스 개발 및 운영을 위한 각 기업의 포지셔닝과 협업 모델 구체화 역시 필요하다.

마지막으로 스마트그리드는 대단위 투자가 요구될 뿐만 아니라 상용화 및 투자 자금 회수 기간의 명확화가 쉽지않은 고위험 사업임에도 IT시스템 기반 상시 모니터링과 사고 예방 및 통제체계의 성숙도가 아직 낮다. 스마트그리드가 제시하는 사용자와 공급자를 위한 쌍방향 가치의 실현을 위해서는 충분한 리스크 관리 체계가 마련돼야 한다.

김도엽 <언스트앤영한영 전략컨설팅 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