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개 협력사 200명. 올 들어 대구 성서공단에 있는 자동차 부품업체 한국파워트레인(사장 주인식)을 다녀간 현대·기아자동차 협력업체 숫자다. 세계 최초로 전륜 9단 자동변속기용 토크컨버터(TC)를 개발한 데다 최근 각종 협력사 상을 휩쓸면서 나타난 현상이다. 주인식 사장은 요즘 하루 24시간이 너무 짧다는 걸 느낀다고 한다. TC 양산 일정을 챙기면서 동시에 이틀이 멀다 하고 찾아오는 완성차 및 협력사 방문단을 맞을 채비를 하느라 눈코 뜰 새가 없기 때문이다.

주 사장은 “9단 변속기용 TC 덕분에 당초 계획보다 1년 앞당겨 창립 20주년(2013년)에 매출 5000억원을 달성할 가능성이 높아졌다”며 “대구에서도 자동차 부품 세계 1위 기업이 나올 수 있다는 걸 보여주겠다”고 각오를 다졌다.

◆9단 자동 변속기용 TC 개발

TC는 엔진의 동력을 속도 변화에 따라 증폭 전달하는 자동변속기 핵심부품이다. 지금까지는 전륜 6단이 최고였는데 한국파워트레인이 100년 역사의 자동변속기 세계 1위 업체인 독일 ZF사와 손잡고 세계에서 처음으로 전륜 9단 TC 개발에 성공했다.

주 사장은 “9단 전륜은 수동변속기에 버금가는 연비가 나오게 해주는 엄청난 기술”이라며 “전륜은 변속기와 TC를 설계할 수 있는 공간이 후륜에 비해 비좁기 때문에 기술 난도가 훨씬 높다”고 강조했다. 특히 이번 프로젝트는 글로벌 TC ‘빅2’인 독일 삭스와 일본 엑시디를 제치고 수주해 더 큰 의미가 있다는 게 주 사장의 설명이다. “삭스와 엑시디는 각각 ZF와 도요타의 자회사입니다. 한국이 제조업 강국 독일과 일본을 제패한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한국파워트레인은 ZF와 장기 공급 계약도 체결했다. 2013년부터 8년간 약 1조원어치를 공급하기로 했다. ZF의 변속기가 크라이슬러 혼다 재규어 BMW 벤츠 등 고급 브랜드들에 주로 장착됨에 따라 자연스레 완성차 고객 다변화도 꾀할 수 있게 됐다.

◆기술동냥 대(代) 끊겠다

1993년 한국파워트레인을 설립한 주 사장의 이전 직장은 현대차였다. 그가 현대차에서 일하던 1980년대는 자동차 업계에 막 변화의 바람이 불던 때. 자동차 배기가스에 대한 규제 움직임이 일기 시작했고 자동변속기 시장이 꿈틀댔다. 이런 동향을 파악해 국내 부품업체들이 변화에 대응할 수 있게 신기술을 갖고 있는 글로벌 기업들과 기술 제휴를 맺도록 연결해주는 게 그의 업무였다.

주 사장은 “기술동냥만으로는 한국 자동차 산업이 발전할 수 없다는 생각이 절실했다”며 “당시 세계 최강이었던 일본을 이기는 부품회사를 육성하는 게 꿈이었다”고 창업 당시를 회상했다.

그는 “기술은 현재 일본의 95% 수준까지 따라 잡았다”며 “나머지 5%는 (일본이) 60년 이상 자동차 생산을 해오는 동안 실패를 통해 배운 ‘실패 노하우’”라고 덧붙였다. 경험이 상대적으로 부족할 뿐, 기술력에는 차이가 없다는 자신감이다.

◆굴뚝산업의 디지털화

주 사장은 요즘 “상복이 터졌다”는 말을 많이 듣는다. 현대차 ‘협력사 대상 및 동반성장 부문상’, 현대파워텍 ‘우수협력사 최우수상’ 등 굵직한 상을 연거푸 수상해서다. 전륜 9단 개발 호재까지 겹치면서 자동차 업계에는 ‘한국파워트레인 배우기 열풍’이 불고 있다.

왜일까. 주 사장은 비결을 궁금해하는 기자를 인터뷰 도중 집무실 구석으로 안내했다. 대형 모니터 6개가 3개씩 2열로 나란히 있었다. 주 사장이 터치스크린 모니터에 손을 대고 두 번 누르자 어떤 공정 라인에서 어떤 문제가 생겼는지가 화면에 나타났다. “노랑 불이 들어온 곳은 제2공장 후공정실인데 약간의 문제가 생겨 손보는 중”이라는 설명이 뒤따랐다. 공장 라인의 가동 현황을 볼 수 있는 IT(정보기술) 상황판인 것이다.

주 사장은 “사장과 임원 방에는 모두 상황판이 설치 돼 있어 흩어져 있는 4개 공장이 잘 돌아가는지, 문제는 잘 해결되고 있는지 실시간으로 파악할 수 있다”며 “문제 발생과 동시에 작업자와 임원진이 소통해 해결책을 모색하기 때문에 보고할 필요가 전혀 없다”고 설명했다. 그는 “자동차 부품사(史)를 새로 써 나가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대구=김병근 기자 bk11@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