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대 후반 미국의 유명 자동차 전문지 카앤드드라이버(Car & Driver)는 미국 땅에 처음 바퀴를 내린 쏘나타를 ‘합리적인 가격으로 살 수 있는 쓸 만한 세단’이라고 평가했다. 저렴한 가격은 장점이지만 이면에는 쏘나타를 별로 추천하고 싶지 않다는 뜻이 숨어 있었다. 기껏해야 포니 또는 엑셀 등의 소형차로 덤빈 현대차가 감히 미국에서 일본과 미국이 경합 중인 중형급에 진출한다는 게 우스웠기 때문이다.

물론 지금은 위상이 달라져 있다. 미국 내 유력 언론은 쏘나타를 ‘일본차에 버금가는 차’로 평가한다. 소비자 반응도 좋은 편이다. 제품력 향상 속도에는 미국 사람도 혀를 내두를 정도다. 이유는 간단하다. 쏘나타는 국내보다 해외 반응이 매우 중요한 차종이었기 때문이다. 드넓은 땅 미국에서 인정을 받아야만 했던 현대차의 숙명적 요구가 쏘나타를 만들어냈다 해도 과언이 아닌 셈이다.

덕분에 시기와 질투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꽤 오래 전 영국의 공영방송 BBC가 이틀에 걸쳐 황금시간대에 한국산 승용차를 조롱하는 프로그램을 방영한 일이 있었다. ‘태평양 주변 국가의 자동차를 탐방해 보자’라는 제목의 프로그램에서 진행자였던 제레미 클락슨은 “담배 한 갑보다 더 싸구려인 차는 모두 한국산”이라고 비아냥거렸다. 심지어 ‘엑센트(Accent)’를 빗대 ‘액시던트(acci-dent·사고)’라고 묘사하기도 했다. 당시 이 화면은 영국에서 공부하던 한국인 유학생이 인터넷에 올리면서 화제가 됐다. 영국 자동차 산업이 붕괴하면서 성장하는 한국차가 눈엣가시였음은 물론이다.


한국차 성장의 주역은 역시 쏘나타다. 애초부터 수출 전략형 중형차로 개발된 쏘나타는 차명 선정 과정부터 미국 시장에 초점을 맞추고 있었다. 현대는 Y-2 프로젝트가 마무리될 즈음 전 사원을 대상으로 차명을 공모했다. 당시 총 120개 응모작 중 ‘퀘스트라(Questra)’ ‘쏘나타(sonata)’ 등 6가지가 최종 후보에 올랐다. 현대는 Y-2가 수출 전략형인 만큼 해외 딜러들의 의견을 들어보는 것이 좋겠다고 판단해 미국 현지법인(HMA) 및 미국 전역에 있는 240명의 딜러에게 의견을 물었다. 이들은 한결같이 ‘쏘나타’를 지목했다. 부르기 쉽고 기억하기 좋다는 게 이유였다.

하지만 담당자들은 난색을 표명했다. 쏘나타라는 이름은 이전 스텔라 시리즈에 이미 사용했던 차명이고, 또 품질 문제로 ‘소나 타는 차’라는 이미지가 적지 않았기 때문이다. ‘신차=새로운 차명’이 마치 공식처럼 사용되던 때여서 당시 국내 판매팀은 ‘쏘나타’ 차명 사용에 강한 반기를 들었다. 앞바퀴 굴림에 첨단엔진을 장착한 혁신적인 차인데, 이미 사용했던 이름을 다시 쓰면 국내 소비자들에게 신차 이미지를 심어주는 데 지장이 있다는 입장을 굽히지 않았다.

하지만 해외의 경우 이미 소비자 머리에 각인된 종전 차명을 동급차에 그대로 계승해 나가는, 이른바 ‘동급별 차명 일체화’를 시도하는 사례가 많았다. 한마디로 차명에 브랜드 정통성을 부여하는 게 대부분이었고, 이 경우 소비자도 차명 인식이 쉬워 마케팅 비용 절감도 가능했다.

우여곡절 끝에 차명은 ‘쏘나타’로 결정됐다. 향후 국내보다 해외 판매에 주력한다는 주장이 받아들여졌다. 덕분에 국내 최초 ‘동급별 브랜드 단순화’ 개념이 만들어졌다. 이후 쏘나타는 쏘나타II, 쏘나타III, EF쏘나타, NF쏘나타, YF쏘나타로 변신을 거듭했다. 그랜저, 뉴그랜저, 그랜저XG, 그랜저TG, 그랜저HG도 당시 세워진 원칙에 따른 이름 짓기의 결과인 셈이다.

권용주 오토타임즈 기자 soo4195@autotime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