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가 25일부터 유럽연합(EU) 국제통화기금(IMF) 유럽중앙은행(ECB) 등 ‘트로이카’와 구제금융 조건 재협상에 들어간다. 전망은 밝지 않다. 협상에 앞서 그리스 새 정부가 내놓은 정책 목표가 사실상 긴축 약속을 뒤집겠다는 내용이어서 상당한 진통이 예상된다. 씨티그룹은 이런 우려를 반영해 오는 12월 결국 그렉시트(Grexit·그리스의 유로존 탈퇴)가 현실화될 것으로 내다봤다. 국제신용평가사 피치는 스페인 은행권의 부실 문제가 지난주 발표된 스트레스테스트(재무건전성 평가) 결과보다 더 심각하다고 지적했다. 그리스 총선과 스페인 은행권 스트레스테스트 등 고비를 넘겼지만 유럽 위기는 여전히 갈 길이 멀다는 진단이다.

◆살아 있는 불씨 ‘그렉시트’

뉴욕타임스(NYT)는 안토니스 사마라스 신임 총리가 이끄는 그리스 연립정부가 25일 아테네를 방문하는 트로이카와 1300억유로(약 189조원) 규모의 2차 구제금융 조건 재협상을 시작한다고 23일(현지시간) 보도했다. 그리스 정부는 협상에 앞서 구제금융 조건 재협상과 성장 촉진, 사회보장 강화 등 정책 목표를 담은 성명서를 발표했다.

성명서에서 그리스 정부는 “트로이카에 재정적자 감축 이행 시한을 2014년에서 2016년으로 2년 연장해 달라고 요구하겠다”고 밝혔다. 공공부문 인력을 추가로 줄이는 것에 대해서도 반대 입장을 분명히 했다. 구제금융 조건으로 금지했던 민간 노동조합의 단체협약 교섭권을 부활시키는 방안도 추진하기로 했다. 또 세금 체납액은 수입의 25% 이상 부과하지 않기로 했다. 식당 등 외식산업의 부가가치세를 인하하는 방안도 포함됐다.

이 같은 정책 목표는 재정적자 감축 등 구제금융 이행 조건을 지키겠다고 약속한 신민주당의 기존 공약을 뒤엎은 것이다. 심지어 긴축정책에 반대하는 급진좌파연합(시리자)이 내세운 정책과 유사하다는 분석도 나왔다. 이에 따라 트로이카와의 협상은 난항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무엇보다 “구제금융 조건 재협상은 없다”고 강조해왔던 독일 등과 갈등이 예상된다고 NYT는 전했다.

씨티그룹은 그리스가 오는 12월 결국 유로존(유로화 사용 17개국)을 탈퇴할 것으로 예상했다. 윌럼 뷰이터 씨티그룹 수석이코노미스트는 파이낸셜타임스(FT) 기고문에서 “그리스가 9월과 12월로 예정된 트로이카의 두 차례 구제금융 조건 이행 평가에서 모두 낙제점을 받아 결국 유로존에서 쫓겨날 것”이라고 주장했다. 트로이카가 구제금융 조건을 이행하지 않은 그리스에 지원을 끊으면 디폴트(채무불이행)와 유로존 탈퇴가 불가피하다는 얘기다.

◆“스페인 은행권 부실 더 심각”

스페인 은행권 문제도 심상찮다. 구제금융을 받기로 했지만 부실 규모가 스트레스테스트 결과보다 더 심각하다는 분석이 나왔다.

피치는 22일 보고서를 내고 스페인 정부의 의뢰로 컨설팅사 올리버와이먼과 롤란트베르거가 실시한 은행권 스트레스테스트 결과가 부정확하다고 지적했다. 피치는 “이들이 산정한 스페인 은행권 필요자금 510억~620억유로는 핵심자기자본비율 6%를 기준으로 했다”며 “스페인 은행권이 앞으로도 대규모 대출을 받으려면 핵심자기자본비율을 유럽은행감독청(EBA) 기준인 9%에 맞춰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핵심자기자본비율을 9%로 높이면 스페인 은행권은 900억~1000억유로가 필요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EU 등은 스페인 정부가 25일 은행 지원을 공식 요청하면 스페인 정부와 협상을 거쳐 내달 9일까지 지원 금액 등을 확정할 계획이다.

전설리 기자 slju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