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자들은 채권·연금보험으로 방향 틀었다
한 증권사의 초우량고객(VVIP)인 A씨(53)는 올초부터 40억원 규모의 금융자산 포트폴리오를 새로 짜고 있다. 유럽 재정위기 여파가 앞으로 몇 년간 계속될 것으로 판단, 주식보다는 채권이나 대안투자상품 등 안전형 자산의 비중을 늘리는 게 골자다.

지난 5월 말 현재 A씨의 주식투자 금액은 5억7000여만원으로 유럽 재정위기가 수면 위로 떠오른 1년 전(8억여원)보다 28.7% 줄었다. 대신 채권자산은 5억원에서 14억6000여만원, 주가연계증권(ELS)과 헤지펀드 등 대안투자상품은 4억9000여만원에서 10억5000여만원으로 늘었다.

금융자산 10억원 이상을 가진 ‘슈퍼리치’들이 안전자산으로 서둘러 대피하고 있다.

삼성증권이 슈퍼리치 전담 점포인 SNI(Samsung & Investment) 개설 2주년을 맞아 이들의 금융자산 포트폴리오를 분석한 결과 올 들어 슈퍼리치들의 안전자산 선호도가 부쩍 높아진 것으로 나타났다. 슈퍼리치들은 최근 1년 동안 국내외 채권 및 방카슈랑스상품 투자 비중을 크게 늘린 대신 주식 투자 비중은 줄여 글로벌 금융위기에 대처하고 있는 것으로 분석됐다.

슈퍼리치의 작년 5월 말 대비 지난 5월 말 금융자산 포트폴리오를 분석한 결과 주식 직접투자 비중은 71.6%에서 67.5%로 낮아졌다. 삼성증권 관계자는 “슈퍼리치 대부분이 상장사의 대주주인 경우가 많아 주식 직접투자 비중을 크게 줄이지는 않았다”며 “하지만 금융투자 상품별 투자 포트폴리오를 꼼꼼히 뜯어보면 주식 등 위험자산에 대한 회피현상을 엿볼 수 있다”고 말했다.

주식 투자를 제외한 금융상품 투자 비중을 100으로 봤을 때 채권상품 비중은 지난해 12.3%에서 21.4%로 9.1%포인트 높아졌다. 국내채권 비중은 10.3%에서 16%로, 해외채권 비중은 2.0%에서 5.4%로 각각 늘어났다. 연금보험 등 방카슈랑스 비중도 3.6%포인트 높아졌다. 환매조건부채권(RP) 등 현금성자산과 ELS 등 장외파생상품 비중도 각각 2.5%포인트와 1.0%포인트 늘었다.

박경희 삼성증권 상무는 “장기 채권이나 방카슈랑스 등 절세와 안정적인 수익을 동시에 추구하는 상품과 중위험·중수익 상품으로 꼽히는 ELS 및 한국형 헤지펀드 등으로 슈퍼리치들이 자산을 옮기고 있다”고 설명했다.

슈퍼리치들은 주식 비중을 줄이면서 랩어카운트와 펀드에서 빠져 나오고 있다. ‘차(자동차)·화(화학)·정(정유)’의 질주를 부채질했던 랩어카운트가 전체 금융상품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31.5%에서 17%로 쪼그라들었다. 국내외 주식형 펀드투자 비중도 15.4%에서 11.4%로 줄었다.

삼성증권의 SNI는 초고액자산가를 위한 투자자산 관리 및 세무, 상속 등 ‘패밀리 오피스’ 전반에 걸친 서비스를 제공하는 VVIP 전담 점포다. 거래 고객은 3690명에 달한다. 1인당 평균 예탁액은 22억5000만원이며, 전체 예탁자산은 8조3000억원으로 집계됐다.

손성태 기자 mrhand@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