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1974년 대학 졸업 후 육군 ROTC 12기로 임관해 1976년 6월 전역할 때까지 강원도 화천의 최전방 부대에서 소대장으로 복무했다. 눈 오는 날마다 전방 도로의 제설 작업으로 밤새도록 추위에 떨었던 일, 진지 구축 및 경계 근무로 수개월 동안 계속 야영했던 일 등 그때의 추억들은 40년 가까이 지난 지금도 또렷하게 남아있다. 그 중에서도 특히 기억에 남는 몇 가지가 있다.

칠흑 같은 밤, 우리 소대는 북녘땅이 손에 잡힐 듯 가까운 철책선을 지키고 있었다. 그런데 철책 가로목에 쌓아둔 돌들이 갑자기 투두둑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이 지역으로 북한군이 침투해 총격전을 일으킨 적이 있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에 긴장했다. 초병들은 참호에 들어가 숨죽인 채 명령을 기다리고 있었다. 저 어둠 너머에 북한군이 있다면 목숨이 위험해질 수도 있다는 생각에 풋내기 소대장이었던 내 등에서도 식은땀이 흘렀다.

하지만 누군가는 현장을 확인해야 했다. 그 일은 리더인 나의 책임이었다. 두려움 속에서도 소리가 났던 곳을 향해 한 걸음씩 전진해 나갔다. 다행히 별다른 이상은 없었고, 나는 야생동물이 지나간 것으로 판단, 상황을 종료했다.

이처럼 어려운 상황에 부닥칠 때마다 먼저 나서고자 노력했더니 나에 대한 소대원들의 신뢰가 깊어지는 것을 느꼈다. 이런 경험은 내가 최고경영자(CEO)가 된 이후 임직원들에게 리더가 갖춰야 할 덕목으로 솔선수범과 희생정신을 강조하게 된 바탕이 됐다.

장교 생활을 하면서 ‘긍정의 힘’ 또한 리더가 갖춰야 할 중요한 덕목이라는 점도 배웠다. 군 복무 중 담당 구역 내 중요 구조물 하나가 한여름 폭우로 무너져 내리는 사건이 생겼다. 상부에선 신속하게 복구하기를 원했으나 물자는 부족했고, 이런 일을 해 본 부대원도 없어 막막한 상황이었다. 그 때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것이 군인 정신이며, 군대는 도전을 통해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는 인생 종합 대학’이라는 평소 대대장님의 말씀을 떠올렸다. 긍정적인 자세로 주위를 살펴보니 해결책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리더는 위기 상황 속에서도 해결 방향을 제시하고 구성원에게 ‘할 수 있다’는 긍정의 에너지를 확산시켜 가야만 한다. 리더가 이런 능력을 발휘할 때 그 조직은 새로운 기회를 만들어 내며 성공을 창출할 수 있기 때문이다.

돌아보면 험난한 전방지역에서 복무하면서 기초체력을 튼튼히 다진 것이 지금도 활발하게 활동할 수 있는 밑거름이 됐고, 긍정적인 자세로 매사에 최선을 다하면 어떤 어려움도 극복할 수 있다는 강한 자신감을 갖게 해 줬다고 생각한다. 무엇보다도 최전방 부대의 일선 지휘관으로 생활하며 배우게 된 솔선수범과 희생정신은 지금까지 내가 조직을 이끌면서 모든 구성원의 마음을 하나로 모아 공동의 비전을 달성할 수 있게 해 준 원동력이 아닐까 한다.

신한은행도 대한민국 대표 밀리터리 뱅크라는 자부심을 갖고 장병과의 소중한 인연을 더욱 깊이 가꾸는 따뜻한 동행을 계속해 나갈 것이다. 신한은행은 이미 2005년부터 군 복무를 앞둔 만 19세의 남성을 대상으로 체크카드인 ‘나라사랑카드’ 사업을 펼치고 있고 군부대 자매결연 등을 통한 장병 복지 증진에 관심을 기울여왔다.

최근 심각한 취업난 등 우리 청년들이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음을 안다. 하지만 이럴 때일수록 좌절하지 말고 자신의 꿈을 향해 긍정적인 자세로 도전해 달라는 당부를 하고 싶다.

서진원 < 신한은행장 >

◆알림=기업 최고경영자(CEO), 고위 공무원, 협회장 및 단체장 등 오피니언 리더의 군 생활 경험을 담은 ‘나의 병영 이야기’ 원고를 받습니다. 이메일 people@hankyung.com, 문의 (02)360-424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