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각국의 재정위기에 대응하기 위해 유로존(유로화 사용 17개국)이 조성한 위기 대응 기금으로 위기국 국채를 직접 매입해야 한다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다.

유럽중앙은행(ECB) 고위 관계자까지 “유럽재정안정기금(EFSF)이 직접 그리스 스페인 이탈리아 등 남유럽 국채를 사야 한다”고 공개적으로 주장한 것. 지난 19일 폐막한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에서도 EFSF와 내달 출범하는 유로안정화기구(ESM)가 재정불량국 국채를 직접 사들이는 방안이 거론됐다.

지금까진 기금이 채권을 발행해 조성한 자금을 재정위기국에 지원하면 각 국가가 이 돈으로 급한 불을 끄는 간접적인 방법이 이용됐다. 기금의 국채 매입 규정이 매우 까다로운 탓이다.

하지만 이탈리아와 스페인 국채 금리가 1년 넘게 연 5% 이상을 유지하면서 자금 조성 부담을 덜어주자는 주문이 늘고 있다.

◆ECB도 “유럽기금으로 국채 사들여야”

파이낸셜타임스는 20일 “베누아 퀘르 ECB 집행이사가 ‘EFSF를 통해 국채를 매입하면 이탈리아, 스페인 정부의 자금조달 어려움이 완화될 것’이라고 주장했다”고 보도했다.

쾨르 이사는 “어떻게 1년이 넘도록 EFSF가 간접 지원만 할 수 있었는지 미스터리”라며 “유럽 정치권이 명확한 결단을 내리지 않고 있으니 시장이 혼란스러워하는 것은 당연하다”고 강경발언을 쏟아냈다.

앞서 마리오 몬티 이탈리아 총리는 G20 정상회의에서 “ESM이 재정위기국 국채를 사도록 하자”고 제안했다. 영국 일간 가디언은 “G20이 EFSF의 남은 자금 2000억유로와 5000억유로 규모의 ESM을 합쳐 총 7000억유로를 동원해 스페인, 이탈리아 국채를 살 수 있도록 합의했다”고 보도하기도 했다. 이에 대해 독일 정부는 “ESM과 EFSF의 국채 매입 허용은 사실무근”이라고 부인했고,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는 “기금의 국채 매입은 이론적으로만 가능한 일”이라고 일축했다. 독일은 기금의 27%를 부담하는 최대 출자국인데 불량국채를 대거 사들였다가 부담을 키울 수 있다며 반대하고 있다.

EFSF는 출범 당시부터 유럽 각국의 국채를 사들일 수 있는 길을 열어놨지만 관련 규정이 복잡해 사문화된 상태다. 위기국이 ECB와 사전 협의를 거친 뒤 EFSF에 채권 매입을 공식 요청하면 복잡한 협정을 맺고 나서 국채를 사도록 사실상 손발을 묶어놓은 것이다.

하지만 위기 대응 기금이 국채를 매입하도록 허용하라는 요구가 거세지면서 21일 유로존 재무장관 회의와 24일 유럽 4개국 정상회의, 27~28일 EU 정상회의에서 국채 매입 문제가 중점적으로 논의될 것으로 예상된다.

◆스페인 은행권은 여전히 ‘화약고’

글로벌 금융시장은 21일(현지시간) 발표 예정인 스페인 은행의 스트레스테스트(자본충실도 검사) 결과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뉴욕타임스는 공식 발표에 앞서 은행 자본확충에 필요한 자금 규모가 600억~700억유로로 추산된다고 보도했다. 이는 앞서 스페인 언론이 추정했던 1500억유로에 비해선 부실 규모가 줄어든 것이다.

하지만 남유럽 국가 금융불안 공포는 여전히 가시지 않고 있다. 자산운용사 피델리티는 보고서를 통해 “이탈리아와 스페인의 정부 부채는 총 2조8000억유로로 그리스와 포르투갈, 아일랜드 전체 정부 부채의 4배에 달한다”고 경고했다. 21일 스페인 정부는 22억유로 규모 중기국채 발행에 성공했지만 발행금리는 크게 올랐다. 2년물 금리는 3월 연 2.07%에서 4.71%로 두 배 이상 뛰었다. 5년물 국채금리는 유로존 가입 이후 처음으로 발행금리가 연 6.0%를 넘어섰다.

김동욱 기자 kimdw@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