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0년대 경제전문지 포천은 매년 GE의 최고경영자(CEO) 잭 웰치를 가장 존경받는 CEO로 선정했다. 그는 관료주의를 타파하고 사업을 재조정했다. 업계 1, 2위가 아닌 사업은 처분했다. 매력적이라 생각되지 않는 사업은 매각하고 방송, 금융 서비스 같은 수익성 높은 사업에 재투자했다. 그는 이런 노력으로 100분기 연속 영업이익 성장을 일궈냈다.

그러나 이 같은 성장에는 함정이 있었다. 그는 이익 목표를 설정하고 모든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 달성하도록 독려했다. GE가 특정 사업 부문에서 큰 손실을 겪을 때마다 웰치는 다른 부문에서 특별이익을 만들어 냈다. 특정 시기에 큰 이익을 내면 쌓아뒀다가, 실패한 연도의 손실을 메웠다. 회계사들은 실제 이익이 장부상 이익보다 훨씬 낮았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성장 속도도 빠르지 않았다. 그러나 이런 사실은 GE의 주가가 하락할 때까지 공표되지 않았다.

월스트리트 기자 출신인 경제 칼럼니스트 로저 로웬스타인은 《크래쉬》에서 20세기 말 미국의 유례없는 대호황의 끝에서 일어난 스톡옵션 광풍, 벤처 붐, 거품붕괴 과정을 상세히 묘사한다. 인간의 탐욕이 주주 중심주의라는 탈을 쓰고, 회계 부정도 서슴지 않으며 많은 사람들에게 어떻게 피해를 끼쳤는지 그는 분석한다. 투기는 신기원을 이뤘고, 투자자를 기만하는 행위는 극치에 달했다. 증시 거품이 참혹했던 잔해를 남기고 꺼져버린 후 리먼브러더스 파산이라는 또 다른 금융위기가 온 것은 우연이 아니었다.

저자는 “주가 폭락의 원인은 폭락 이전의 호황에서 찾아야 한다”고 말한다. 1990년대 내내 지속된 실리콘밸리의 약진에 들떠서 사람들은 너도나도 주식 투자에 뛰어들었다. 연기금도 증시에 유입되며 주가를 띄웠다. 기업의 가치를 향상시키자는 구호에 모두 환호했다. 하지만 이것은 통상적인 기업가치가 아니라 매일의 주가로 나타나는 기업가치 향상을 목표로 했다. 장밋빛 환상이 시장을 지배했다. 은행가들은 허위대출을 하고 애널리스트들은 진실을 덮었다. 파생상품의 등장은 거품의 크기를 키웠다. 저자는 “아무리 사소하더라도 거짓말이 통용되는 문화의 위기가 거품 붕괴를 초래했다”고 지적한다.

호황의 주역이었던 유명 CEO들도 도마에 올랐다. 마이클 아이즈너 전 디즈니 CEO 는 1980~1990년대 큰 성공을 거둔 명사였다. 그가 디즈니에 취임한 이후 1990년대 초반부터 1997년 말까지 주가는 8.5달러에서 32달러로 거의 4배나 뛰었다. 아이즈너는 그에 대한 보상으로 5억6500만달러에 이르는 스톡옵션을 행사했다.

하지만 이후 디즈니의 사업은 침체기를 맞았다. 주가는 16달러로 폭락했고, 그가 받은 보상의 근원이었던 이익은 대부분 사라졌다. 아이즈너는 13년 동안 재임하면서 8억달러 이상 챙겼고, 그동안 주주들은 미국 국채보다 적은 수익을 올렸다.

저자는 신기술에 대한 시장의 맹목적인 애정도 문제가 있다고 지적한다. 그는 “인터넷이 수익성을 올려준 것이 아니라 오히려 떨어뜨렸다”고 말한다. 인터넷은 소비자의 힘을 향상시키고, 정보의 불균형을 해소했다. 인터넷은 기업의 이윤을 보호해주던 지리적 우위나 정보우위를 없애버렸다는 것. 인터넷의 혁신성이 사회의 생산성을 높였지만 기업의 수익 증대에는 기여하지 못했다고 분석한다.

투자자 역시 비난을 면할 수 없다는 게 저자의 생각이다. 주식을 보유한 일반 대중이 실적관리나 분식회계에 갈채를 보내지 않았더라면, 경영자들이 허황된 이야기를 만들어낼 이유도 없었다는 것이다. 시장 거품이 진행될 수 있도록 추진력을 제공한 ‘시대정신’은 바로 ‘투자윤리 기준의 하락’이었다.

최종석 기자 ellisic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