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 자산, 中에 헐값에…" 분노의 시위
-
기사 스크랩
-
공유
-
댓글
-
클린뷰
-
프린트
르포 -'금융위기' 스페인을 가다 (下)
정부 앞장서 '묻지마 투자'
공항 7곳 이·착륙 全無…빅5 건설사 중 2곳 무너져
정부 앞장서 '묻지마 투자'
공항 7곳 이·착륙 全無…빅5 건설사 중 2곳 무너져
건설자재 공급업체 아로아를 운영하는 안토니오 디아스는 최근 60여명의 직원을 대부분 내보내고 카스티야 광장 시위대에 합류했다. 지방정부가 수개월째 대금을 지급하지 않아 임금 체불에 시달린 데다 부도 일보 직전에 몰렸기 때문이다. 디아스는 “지방정부로부터 이미 받았어야 할 돈이 500만유로가량인데 올 들어서 받은 돈은 10만유로도 안 된다”고 하소연했다.
소형 소매잡화점인 ‘알리메타시온’을 운영하는 카브레라 로베스티아노는 지나가는 시위대를 보면 눈살을 찌푸리곤 했지만 지금은 본인이 시위대로 변했다. 그는 “마드리드 시내 알리메타시온 점포 수천여곳 중 절반 이상은 중국인이 경영하고 있다”며 “정부가 나라를 중국에 팔아먹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중국 업체들은 스페인 곳곳에 대형 물류센터를 만들어 ‘메이드 인 차이나’를 스페인 전역에 유통시키고 있다. 로베스티아노는 “스페인 청년들은 모두 실업자가 됐는데 정부는 외국인들의 부 축적을 지원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스페인 경제 전문가들은 위기를 키운 주요 원인을 “정부의 리더십 부족과 신뢰 상실”이라고 지적한다. 마드리드에 있는 다국적 금융컨설팅 기업 AFI의 알폰소 가르시아 모라 이사는 “2007년 미국의 서브프라임 모기지 부실 사태가 금융권의 고위험 파생상품에서 비롯됐다면 스페인의 부동산 버블 붕괴와 금융권 부실은 사실상 스페인 정부의 작품”이라고 강조했다.
유로존 가입 이후 금리가 떨어지자 스페인 지방정부들은 표심을 공략하기 위해 경쟁적으로 학교와 공항, 카지노, 병원, 공공 양로원 등을 지었고 외국인 부동산 투자 규제도 완화했다. 정부와 민간, 외국인까지 가세한 ‘묻지마 투자’ 광풍이 불었다. 결국 부동산 붐이 꺼지면서 마르틴사 파데사, 콜로니알 등 스페인 빅5 건설사 중 2곳이 무너졌고 지방 건설사 수백여 곳도 문을 닫았다.
스페인 은행권의 부실채권 비율은 지난 4월 현재 8.72%. 아우스방크의 루이스 피네다 살리도 회장은 “사실상 가계대출 비중은 부실채권의 30%에도 못 미친다”며 “나머지는 지방정부와 건설사가 빌려간 돈”이라고 설명했다.
실례로 마드리드 인근 카스티야라만차 주정부는 2008년 14억유로(약 2조1000억원)를 들여 연 2500만명을 수용할 수 있는 국제공항을 지었지만 비행기 한번 제대로 띄워보지 못하고 지난 4월 문을 닫았다. 스페인 내 항공기 이·착륙 기록이 전무한 유령공항이 7곳에 달한다. 17개 스페인 지방정부의 빚은 총 1451억유로(약 212조원)에 달한다. 복지 포퓰리즘이 낳은 대가였다.
살리도 회장은 “사회당 정권 10년간 의료비·교육비 등 공공지출이 확대되면서 모럴해저드가 횡행했다”며 “병원 환자 명단에 이름만 올려도 돈을 주다보니 국민들 사이에서는 ‘정부 돈을 못 타면 바보’라는 인식이 생겨났다”고 말했다.
고경봉 기자 kgb@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