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빠르게 변한다. 나이 들면 세월이 더 빠르게 가는 모양이다. 엊그제 개강을 한 듯한데 어느새 종강이다. 대학의 학사 일정이 학기 단위로 이뤄지다 보니 종강무렵이 되면 숙제를 다 마친 학생 때의 기분으로 돌아간다. 성취와 안도가 혈관 속 피처럼 돌고 내일의 또 다른 희망이 숨소리와 함께 새로 만들어진다. 몸 전체로 다가오는 이런 느낌 가운데서도 시간의 속도는 특별하다.

시간의 절대량은 누구에게나 같지만 사람에 따라 그 실감의 양은 달라진다고 한다. 학자들은 전자를 양적 시간, 후자를 질적 시간이라고 말한다. 하루 24시간이 소년들에겐 30시간처럼 느껴지고 노인들에겐 12시간처럼 체험되는 경우가 바로 질적 시간이다. 사랑하는 연인과 함께 하는 시간은 너무 빨리 지나는 것 같고, 직장 상사의 질책 시간은 왜 그렇게 천천히 가는지 몸이 꼬인다. 질적 시간은 그만큼 상대적이고 심리적이다.

질적 시간은 또한 문화 변동과도 관련이 깊다. 과학기술의 발달과 뉴미디어의 급속한 보급으로 삶의 환경이 빠르게 변하는 것을 피부로 느낀다. 언제 어디에서든 원하는 정보에 접속이 가능하다. 그리고 폭발적으로 팽창하는 콘텐츠의 홍수 속에 몸을 맡기게 된다. 우리는 지금 스스로의 의지와 상관없이 ‘호모 나랜스(이야기하고 소통하는 인간)’가 되거나 ‘호모 디지피엔스(디지털 기기를 자유롭게 사용하는 인간)’로 진화하는 중이다.

변화엔 좋은 조짐만 있는 게 아니다. 문화 변동 시대의 호모 디지피엔스에겐 격무가 기다리고 있다. 이것저것 가리지 않고 일자리를 찾아다니는 신유목민(네오노매드)도 증가 추세다. 이들에겐 시간이 늘 부족하다. 몸이 둘이었으면 좋겠다거나 시간의 양이 더 많았으면 하고 바란다.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시간이 가치가 되는 시대를 맞고 있는 것이다. 미래엔 시간을 관리해주는 신종직업이 등장한다고도 한다. 타임 컨설턴트, 타임 디자이너다.

시간관리 기술은 누구에게나 새로운 도전이다. 시간이 많을수록 좋다는 법은 없다. 양보다 질이 관건이다. 시간의 질은 우리사회의 각종 계량적 지표로 측정할 수 없는 요소들을 가지고 있다. 감동, 영적 각성, 자기애, 이웃을 사랑하는 마음 등이 시간의 진정한 주인공에게 내면화되는 게 중요하다.

시간을 질적으로 살아가게 되면 생의 고양된 기쁨과 평화가 찾아와 다정하게 놀아준다. 감동적인 예술의 바다에 뛰어드는 일, 1주일간을 통째로 비워 산사에서 참선수행을 해보는 일, 하늘 아래 모든 생명을 차별 없이 사랑하고자 서원을 세워보는 일…. 이런 결행들이 우리를 ‘일벌레’나 ‘기계인간’에서 벗어나게 해준다. “소년은 늙기 쉽고 학문은 이루기 어렵나니 아주 짧은 시간이라도 가벼이 여기지 말라”는 옛 가르침이 새삼스레 떠오른다. ‘일촌광음불가경(一寸光陰不可輕).’ 시간을 가벼이 여기지 않는 태도가 삶의 질을 보증해주는 첫걸음이다.

김희옥 < 동국대 총장 khobud@dongguk.edu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