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6년 사우디아라비아 담맘시에서 무역업체 해외주재원으로 일하던 이희재 씨(56). 그는 그곳에서 놀라운 광경을 목격했다. 현지인들이 워터슬레이(바나나보트), 카약 등을 타고 물놀이를 즐기고 있었던 것. 해수욕장에서 검은 튜브를 빌려 노는 게 전부였던 한국과 크게 달랐다.

그리고 그는 1992년 한국으로 돌아와 인천 효성동에 ‘우성아이비’를 설립했다. 국내 최초로 고무보트 생산업체를 세운 것이다. 이 사장은 “노출을 금기시하고 폐쇄적인 이슬람 문화권에서 수상레저산업이 매우 발달해 있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며 “선진국과 동남아 국가 등에서도 마찬가지인 것을 확인하고 수상레저산업의 성장 잠재력을 봤다”고 창업 배경을 설명했다.

하지만 그는 아무런 기술도 갖고 있지 않았다. 이 사장은 유명 업체들의 보트를 구입, 모조리 뜯고 조립하는 것을 반복했다. 그 결과 샘플을 만드는 데 성공했다. 수입에 의존하는 모든 부품도 국산화했다. 이 사장은 “못 하나를 만들더라도 물에 녹슬지 않도록 만들어야 하기 때문에 어려움이 컸다”고 기억했다.

해외시장에 진출하는 것 역시 어려웠다. 처음으로 해외 바이어들에게 제품을 선보였던 1995년 파리 보트쇼. 이들의 반응은 차가웠다. 이 사장은 “한국 중소업체가 만든 보트에 생명을 맡길 수 없다며 비웃기도 했다”고 회상했다.

그는 좌절하지 않고 각종 아이디어 상품을 쏟아냈다. 1996년엔 알래스카 등에서 사용할 수 있는 혹한용 보트를 선보였다. 영하 40도까지 견디는 원단을 개발해낸 것이다. 이를 통해 우성아이비는 알래스카 시장에서 60%의 점유율을 차지했다. 1998년엔 하늘을 나는 보트인 ‘플라잉 피시(flying fish)’를 개발했다. 고속정 뒤에 매달아 일정 속도 이상으로 달리면 공기 저항에 의해 수면 위로 6m가량 떠서 날아간다. 150여개의 인증서도 확보했다. 이는 전 세계 보트업체 중 가장 많다. 보트 시장에서 1위를 차지하고 있는 프랑스의 ‘조디악’은 20여개 수준이다.

이 같은 노력 덕분에 우성아이비는 전 세계 60여개국에 제품을 수출하는 데 성공했다. 지난해 수출은 전년 대비 40.9% 늘어나 1453만달러에 달했다. 매출 역시 38.2% 증가해 180억원을 기록했다.

이 사장은 향후 내수시장 확대에 공을 들이겠다고 강조했다. 국내시장이 커질 것이란 판단에 한국인 맞춤형 제품을 준비 중이다. 한국의 강 바닥엔 조개 등이 많아 보트 밑바닥이 찢어지기 쉽기 때문에 이를 보완할 기술도 개발하고 있다. 이 사장은 “국내에선 수상레저산업을 스포츠가 아닌 사치산업으로 보는 경우가 많아 한계가 있었다”며 “하지만 최근 젊은층을 중심으로 수요가 급증하고 있는 만큼 이를 계기로 더욱 성장할 것”이라고 포부를 밝혔다.

김희경 기자 hkki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