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크아웃 중인 벽산건설에 대한 채권단의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신규자금을 여러 차례 지원했는데도 회사가 살아날 기미가 보이지 않고 지속적으로 자금 압박을 받고 있기 때문이다. 더 이상 ‘밑빠진 독에 물 붓기’ 식으로 지원하기 어렵다는 목소리가 높아지면서 풍림산업·우림건설에 이어 벽산건설까지 기업회생절차(법정관리)를 신청하는 수순을 밟을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17일 금융권에 따르면 우리은행 국민은행 농협 등 채권단 관계자들은 최근 몇 차례 회의를 통해 벽산건설에 대한 추가 지원 여부를 검토했다. 벽산건설은 최근 하청업체에 줘야 하는 돈 400억원가량을 지급하지 못하고, 만기가 돌아온 은행 대출금도 갚지 못하는 상황으로 알려졌다. 채권단은 유동성 위기에 계속 몰리고 있는 벽산건설에 돈을 더 빌려줘야 할지를 두고 고심 중이나 부정적인 기류가 좀 더 강하다.

채권단 관계자는 “추가 지원 여부 결정을 위해 회계법인을 통해서 회사에 대한 실사 작업을 벌이고 있는 중”이라고 전했다. 그는 “돈이 나올 구멍이 있으면 어떻게든 회사를 살려보기 위해 추가 지원을 하겠지만 건설 경기가 좀체 살아나지 않다보니 채권단 내에서도 더 이상 지원하기는 어렵다는 얘기가 나오고 있다”고 설명했다.

벽산건설이 채권단에 진 빚은 2010년 7월 워크아웃에 들어갈 때 4500억원 정도였다가 지금은 4000억원가량으로 줄어들었다. 이 중 40%가량이 우리은행 몫이고 이외 신한은행 국민은행 농협 등이다. 회사가 진 빚과 별개로 부산 장전동 등 프로젝트파이낸싱(PF) 사업장에 대한 대출금도 약 4000억원에 이른다. PF 사업장 대주단에는 국민은행과 재향군인회 군인공제회 등이 참여하고 있다.

채권단은 이미 2010년 워크아웃 시작 시점과 작년 7월, 두 차례에 걸쳐 2174억원을 벽산건설에 추가 지원했다. 벽산건설 오너인 김희철 회장도 290억원가량 사재를 출연했다. 하지만 소용이 없었다. 벽산건설은 작년 말 자본총계가 325억원에 불과하다. 자본금 2005억원을 크게 밑도는 자본잠식 상태였다.

벽산건설 대주주와 채권단은 회사 재무구조 개선을 위해 지난 3월 80% 감자를 실시하고 전략적투자자(SI)에게 지분을 매각하기로 했으나 매수 희망자를 찾기 힘든 상황이다. 이 때문에 공개입찰 대신 수의계약으로 입찰 방식을 변경하기도 했다.

채권단은 이달 중 벽산건설에 대한 추가 유동성 지원 여부를 결정할 계획이다. 채권단 관계자는 “PF 사업이 완료된 상태여서 대주단과의 갈등 문제는 크지 않으나, 채권단에 참여하지 않는 채권자들이 회사가 받아야 할 돈에 가압류를 걸어놓은 경우가 많아 채권단이 돈을 돌려받을 가능성이 적다는 것이 가장 어려운 점”이라고 말했다. 그는 “최대한 기업을 살리는 게 좋지만 은행 건전성을 포기할 수도 없다”고 했다.

벽산건설 관계자는 “채권단에서 실사를 통해 유동성이 어떤 상태인지 정확히 파악할 수 있을 것”이라며 “실사 결과를 놓고 추가 지원을 강하게 요구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회사가 운영되려면 돈줄이 막혀선 안 된다”며 채권단 지원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이상은/이정선 기자 se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