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도심 한가운데인 대한문 앞은 하루 세 차례 열리는 덕수궁 수문장 교대식을 구경하는 외국인들과 시민들로 매일 붐빈다. 15일 오후 30도에 육박하는 무더위에도 불구하고 덕수궁 앞은 교대식을 구경하는 시민들로 가득했다.

그런데 수문장 교대식이 열리는 대한문 오른쪽엔 ‘해고는 살인’ 등의 팻말과 함께 세 개의 천막이 설치돼 있었다. 쌍용자동차 노조가 희생자 추모와 해고자 복직을 위해 설치한 분향소다. 지난 4월5일 천막을 설치한 이후 이날까지 72일째 집회를 이어오고 있다.

노조가 설치해 놓은 분향소 앞 돗자리엔 수십병의 1.5ℓ 생수병이 놓여 있었다. 병에는 굵은 사인펜으로 휘발유라고 써져 있었다. 실제로는 돗자리가 바람에 날아가지 않게 하기 위해 물을 채워놓은 것이지만 이를 알 리 없는 시민들은 눈살을 찌푸리기도 했다. 분향소 인근에선 휘발유와 시너병도 보였다.

그런데 분향소 옆에선 쌍용차 노조원과 집회에 참가한 대학생들이 담배를 피고 있었다. 자칫 대형 화재를 불러올 수 있는 아찔한 모습이었지만 바로 앞에 있던 경찰조차 이들을 전혀 제지하지 않았다. 사적 124호인 덕수궁 앞을 지나던 외국인들은 이런 광경을 보고 고개를 갸웃거릴 정도였다.

이유가 뭘까. 관할기관인 남대문경찰서와 중구청은 지난달 24일 대한문 앞 쌍용차 노조 분향소를 강제 철거한 바 있다. 도로법 제38조(도로의 점용)를 위반했기 때문이다. 김병규 중구청 건설관리과장은 “사전에 집회신고를 한 건 맞지만 노조가 휘발유 등 위험물을 갖다놔 시민의 안전이 우려되는 데다 도로를 무단점용한 것은 불법”이라고 밝혔다. 뿐만 아니라 분향소로 인한 불편을 호소하는 시민들의 민원도 많았다. 당시 철거 과정에서 노조원들이 시너통에 불을 붙이려 하자 단속반이 소화기를 분사하는 등 소동을 겪기도 했다. 철거가 이뤄진 24일 밤 쌍용차 노조는 새로운 천막을 들여야 분향소를 다시 설치했다.

다음날 서울시는 중구청 간부들을 불러 “분향소 천막 한 동을 허용해주자”는 의견을 제시했다. 전날 박원순 서울시장이 트위터에 “중구청이 서울시와 아무런 상의없이 (분향소를) 철거조치했다”며 “시장으로서 할 수 있는 일이 뭔지 연구해보겠다”고 말했기 때문이다.

이후 노조는 한 동이었던 천막을 3개 동으로 늘렸다. 중구청은 사실상 단속을 포기한 상태다. 중구청 건설관리과 관계자는 “서울시가 시위대를 옹호하고 있는데다 국회의원들도 철거에 항의해서 우리로선 어쩔 수 없다”고 말했다. 또 다른 중구청 간부는 “합법적으로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인데 시위대로부터 고소까지 당하니 단속할 의욕도 없다”고 털어놨다.

강경민 기자 kkm1026@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