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출의 계절 여름이 찾아왔다. 최근 남녀를 불문하고 휴가철 해변이나 수영장에서 날씬하고 탄탄한 몸매를 자랑하고자 각종 다이어트와 식이요법을 시도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그럼에도 살이 빠지지 않는 사람들은 ‘비만이 유전’이라며 한숨을 쉬곤 한다. 잘못된 식습관으로 뚱뚱해질 수도 있지만 비만은 대체로 유전적 요인이 크게 작용한다는 게 의학계의 공통된 목소리다.

비만은 비만체라는 형질이 따로 존재해 살을 찌우는 게 아니라 에너지를 얼마만큼 만들어내고 쓰는지에 대한 능력을 가진 세포가 좌우한다. 그 능력은 우리 몸을 구성하는 세포의 소기관인 미토콘드리아가 담당한다. 미토콘드리아는 산소를 이용해 포도당을 분해, 생체에 쓰이는 에너지인 ATP를 생성한다. 미토콘드리아가 없으면 세포는 1분자의 포도당에서 2분자의 ATP밖에 생산할 수 없지만, 미토콘드리아가 있으면 38분자의 ATP를 생산할 수 있다.

한마디로 미토콘드리아 활동이 비만 여부를 결정한다는 얘기다. 이홍규 서울대 의대 교수팀은 각각의 실험자 혈액에서 혈소판을 뽑아 미토콘드리아를 제거한 세포에 융합해 새로운 세포인 ‘사이브리드(cybrid)’를 만들었다. 혈소판에는 사람마다 고유한 미토콘드리아가 들어 있기 때문에 사이브리드를 조사하면 개인별 미토콘드리아 활동 정도를 알아낼 수 있다.

연구 결과 사이브리드의 에너지 소모 능력이 떨어지는 사람은 체질량지수(BMI)가 상대적으로 높았다. 이 교수는 “미토콘드리아 기능이 줄어들면 비만의 원인이 될 수 있다는 얘기”라고 말했다.

놀라운 사실은 이 미토콘드리아의 DNA가 오직 어머니로부터 유전된다는 점이다. 정자와 난자가 만나 수정될 때 미토콘드리아가 모여 있는 정자의 꼬리는 떨어져 나가고 핵만 난자와 결합한다. 난자의 미토콘드리아는 수정란 속에 계속 존재한다. 모든 자녀는 부모를 절반씩 닮지만 미토콘드리아의 DNA만큼은 어머니의 형질을 그대로 받는 셈이다. 미토콘드리아와 비만의 관계가 과학적으로 명확하게 밝혀진다면 비만의 탓을 어머니에게 돌리는 상황도 벌어질지 모른다.

은정진 기자 silve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