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에 구제금융 전격 결정…"유로존 붕괴 막자" 150조 투입
스페인이 결국 구제금융을 받는다. 스페인 은행권이 위험한 상태에서 오는 17일 그리스가 총선을 치르는 것을 피하기 위한 선택이다. 긴축을 거부하는 그리스 좌파가 정권을 장악하면 글로벌 금융시장이 감당할 수 없을 것이라고 판단한 것이다. 지원 규모는 당초 예상보다 큰 최대 1000억유로(약 146조원)에 달한다. 더 이상 스페인 위기설이 나오지 않게 하겠다는 의지다.

루이스 데 귄도스 스페인 경제장관은 9일(현지시간) 마드리드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은행권 자본을 확충하기 위해 구제금융을 받기로 했다”고 발표했다. 귄도스 장관은 발표에 앞서 유로존(유로화 사용 17개국) 재무장관들과 2시간30여분에 걸쳐 화상회의를 가졌다. 이 자리에서 구제금융이 결정됐다. 이로써 스페인은 유로존에서 그리스·아일랜드·포르투갈에 이어 네 번째로 구제금융을 받게 됐다.

유로그룹(유로존 재무장관회의)은 주말임에도 예정에 없던 긴급 화상회의를 소집했다. 스페인 위기에 대한 발빠른 대응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회의가 열리기 전 “유럽이 서둘러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금융시장에 큰 혼란이 올 것”이라고 경고했다. 미국과 사전 교감이 있었다는 분석이 나오는 이유다.

전격적으로 구제금융을 결정한 이유에 대해 AP통신은 “스페인 위기가 잠재워지지 않은 채 그리스가 총선을 치르면 유로존이 붕괴될 것이라고 판단한 유로존이 발빠르게 움직였다”고 분석했다. 규모도 파격적이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당초 예상했던 것보다 3배 큰 규모”라고 분석했다. 찔끔찔끔 지원해 위기를 키운 그리스의 전철을 밟지 않겠다는 의지를 보여준 셈이다.

스페인 구제금융에는 긴축 조치 등 강제적인 조건이 따라붙지 않는다. 스페인이 긴축정책을 충실히 이행하고 있어서다. 재정이 비교적 탄탄한 것도 조건이 따라붙지 않은 이유다. 따라서 이번 구제금융은 스페인 은행위기가 재정위기로 번지는 것을 막기 위한 조치라는 평가가 나온다. 금융위기가 심화하면 올여름에 만기가 몰린 국채를 갚지 못할지 모른다는 우려가 높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스페인이 오는 7월과 8월 갚아야 할 국채 규모는 각각 202억유로, 75억유로에 이른다.

전설리 기자 slju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