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권 말 각 부처와 청와대 관료들 사이에 복지부동(伏地不動)과 보신(保身)주의가 팽배해 있다고 한다. 어떤 장관은 국립대 총장으로 나가려고 물밑 작업 중이고, 어떤 고위관료는 국제기구의 자리를 찾고 있다는 소문이 무성하다. 모 수석은 현안을 안 생기게 하는 게 본인의 현안일 만큼 당연히 해야 할 일조차 못 본 척한다. 대통령 주재 비상경제대책회의에 화재·교통사고 예방 대책이 안건이라고 오를 정도다. 또한 핵심보직이나 청와대 비서관으로 가면 차기 정권에서 손해볼까봐 서로 안 가려고 피해다니는 모양이다. 되레 한직이나 교육·파견을 자원하는 진풍경이 벌어지기도 한다. 동문회 향우회 모임에 얼굴을 내비치려고 일을 미룬 채 칼퇴근도 예사다.

정권 5년차마다 벌어지는 공직사회 풍속도가 새삼스러울 것은 없다. 험한 세상에 스스로 길을 찾고, 세간의 이목을 끌 만한 이슈는 안 만들겠다는 공무원 특유의 생존본능이 발동한 결과다. 오죽하면 땅에 붙어 눈만 굴린다는 ‘복지안동’, 낙지처럼 뻘속에 숨는다는 ‘낙지부동’, 납작 업드려 땅과 한 몸이 된다는 ‘신토불이’ 같은 신조어가 나왔겠는가. 정권교체기 증후군을 고착화시킨 것은 후진적인 정치와 인사관행이다. YS정부까지 영남 일색이던 핵심 보직이 DJ정부에선 호남 출신으로 대폭 물갈이되는 등의 경험이 쌓이면서 관료제도가 헌신짝처럼 버려지고 있다. 노무현 정부에선 386이 득세했고, MB정부에선 이른바 ‘고소영’이 보직을 점령했다.

이 때문에 정권 말이면 고위관료들이 너나없이 보신의 달인으로 변신해 차기 정부에 줄대기 경쟁이 벌어진다. 유력 대선주자 측에 핵심자료를 통째로 넘기는 고위직들도 없지 않다는 게 관료사회의 공공연한 비밀일 정도다. 이는 민주주의를 지키고 국가경영의 안정성을 책임져야 하는 관료 제도의 사실상 붕괴를 의미하는 것으로 봐야 한다. 정권 교체기마다 국가관리 시스템이 흔들리는 현상은 곤란하다. 어떤 정권이 들어서든 나라 운영의 기본 틀은 견고하게 유지돼야 마땅하다. 정권 말이라고 해서 동사무소의 등·초본 발급시간이 늘어지진 않는다. 그것은 공복(公僕)의 기본윤리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