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으로 불전함에 넣는 시주금을 제외한 사찰의 모든 수입에 대해 영수증 발급이 의무화되고 신용카드 결제도 가능해진다. 또 출납담당 종무원(직원)이 금전출납을 전담하고 주지는 결재 체계를 통해 관리감독만 하게 된다. 유명무실했던 사찰운영위원회의 위상이 심의기구로 강화돼 사찰 운영의 주요 사항을 심의하고, 운영위원의 3분의 2 이상을 신도들이 맡게 된다.

대한불교조계종 자승 총무원장은 7일 서울 견지동 한국불교역사문화기념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이 같은 내용을 담은 ‘제1차 쇄신계획’을 발표했다.

총무원·포교원·교육원 등 중앙종무기관 대표와 원로, 선·교·율을 대표하는 중진, 교구본사와 중앙종회 대표 등으로 구성된 승가공동체 쇄신위원회가 마련한 쇄신계획의 근간은 출가자(스님)와 재가자(신자)의 역할 분담이다. 출가자는 수행과 포교에 전념하고 신도는 사찰운영과 사회봉사를 맡는다는 것. 출가자들이 돈을 만지지 않도록 해 부정과 일탈의 소지를 없애겠다는 얘기다.

◆사찰운영위 심의 기구로 강화

조계종은 사찰재정 투명성을 강화하기 위해 사찰예산회계법을 제정, 직영사찰과 특별분담금사찰 등 수입이 일정 규모를 넘는 주요 사찰에 대해 외부 회계전문가의 감사를 받도록 했다. 영수증 발급 의무화, 사찰 내 신용카드 사용, 문화재 구역 입장료(관람료) 사찰의 통합전자발권시스템도 추진키로 했다.

또 사찰운영위원회를 심의기구로 강화해 사찰운영위를 거치지 않고는 재산 처분 등에 대한 종단의 승인을 받을 수 없도록 했다. 사찰운영위원은 주지가 3분의 1, 신도회가 3분의 2를 추천토록 해 사실상 신도들이 운영위를 주도하도록 뒷받침했다. 종단과 사찰 운영에 필요한 재가 전문 종무원을 양성하고 중앙 종무기관과 사찰 간의 인사순환도 시행하기로 했다. 주지가 마음대로 종무원을 교체할 수 없도록 해 주지와 종무원의 ‘한통속 비리’를 막겠다는 취지다.

국고보조금 사용 및 관리감독 강화, 직영사찰·직할교구 사찰·교구본사 등 주요 사찰에 대한 재정 공개 확대 방침도 밝혔다.

◆선거제·비현실적 계율 고친다

경선 중심의 선거 제도도 손보기로 했다. 산중(승가)의 총의를 모으는 고유의 선출 방식을 기본으로 하는 선거 제도를 만들겠다는 것. 산중총회에서 만장일치 또는 3분의 2 이상 동의로 방장·조실 등 ‘어른’에게 본사 주지 추천을 위임하는 방식이 거론되고 있다. 총무원장의 경우 스님 모두 참여하는 직선제를 포함한 다양한 선출 방식을 논의해 제도를 개선하기로 했다.

또 계율 전문가들로 위원회를 구성해 올해 말까지 교구본사, 선원, 율원, 강원, 신도회 등 각급 기관에 맞는 청규(규칙)를 제정하고 도박 등 파계 행위에 대한 징계를 대폭 강화키로 했다.

◆전국 사찰 동참이 관건

자승 총무원장은 이날 회견에서 “재임에 대한 생각도 없고 임기에도 연연하지 않겠다고 이미 밝힌 바 있다”며 “남은 임기 동안 종단 쇄신을 위해 물러섬 없이 정진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쇄신계획이 성공하려면 여러 산을 넘어야 한다. 우선 주요 사찰 주지들인 중앙종회 의원들이 오는 21일부터 열리는 종회에서 쇄신을 위한 각종 법령 제·개정에 적극 나서야 한다. 세속과 마찬가지로 입법이 받쳐주지 않으면 개혁은 어렵다. 특히 출가자들을 사찰재정 관리에서 손을 떼게 하는 일도 순탄치 않을 가능성이 크다. 전국의 본·말사에서 저항하거나 비협조적으로 나올 경우 문제는 복잡해진다.

조계종 재무부장 일감 스님은 “쇄신안 실행은 그야말로 만만찮은 일”이라며 “쇄신하지 않으면 공멸한다는 위기의식을 가질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서화동 기자 firebo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