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금융개혁특구' 원저우 가보니…신문엔 연일 '기업인 야반도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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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간대출 분쟁도 하루 100개꼴
미국·유럽 경기악화 직격탄
2009년후 中企 600여개 줄도산
은행부실채권 비중 2005년후 최고
정부, 뒤늦게 사채시장 양성화 추진
관료주의 걸림돌…효과는 미지수
미국·유럽 경기악화 직격탄
2009년후 中企 600여개 줄도산
은행부실채권 비중 2005년후 최고
정부, 뒤늦게 사채시장 양성화 추진
관료주의 걸림돌…효과는 미지수
“원저우 사장 또 도망가다.”
지난 6일 중국 상하이에서 원저우로 가는 비행기안. 탑승구에서 집어든 ‘원저우상바오(溫州商報)’ 1면에는 소매회사인 쥐썬(炬森)그룹의 궈촨즈(郭傳志) 회장이 1억위안(약 180억원)의 고객 돈을 챙겨 달아났다는 기사가 실렸다.
중국의 금융개혁실험구로 지정된 원저우가 다시 기업인들의 야반도주로 시끌시끌하다고 이 신문은 보도했다. 최근에는 원저우의 유명 기업인인 린춘핑(林春平) 춘핑그룹 회장이 세금을 환급받으려고 1억위안이 넘는 가짜 세금청구서를 발행했다가 경찰의 추적을 받고 있는 터다.
‘중국의 유대인’으로 불리며 중국 전역의 부동산시장을 주름잡았던 원저우 상인들은 요즘 최악의 상황을 맞고 있다. 지난해부터 시작된 중소기업의 줄도산과 사채시장 붕괴로 원저우 경제는 추락을 거듭하고 있다. 신발 원단 등 1차산업의 주요 생산기지인 원저우는 미국 유럽 등 수출시장의 경기가 나빠지면서 직격탄을 맞았다.
현지에서 무역업을 하는 유종목 씨는 “2009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600개 이상의 중소기업이 부도 났다고 들었다”며 “부채 규모만 수천억 위안”이라고 전했다. 원저우는 지난 4월에도 수출이 전년 동기에 비해 5.89%나 줄어든 13억6700만달러에 그쳤다.
원저우 시정부에 따르면 4월 말 현재 원저우의 민간 대출은 800억위안 수준으로 지난해 8월에 비해 30% 이상 줄었다. 사채시장의 금리도 21.58%로 3%포인트 떨어졌다. 그렇다고 상황이 나아진 것은 아니다. 지난해 8월 이후 원저우 법정에는 2만2000여건의 민간 대출 분쟁이 접수됐다. 하루에 100개꼴이다. 이 기간 800여개의 금융중개회사가 문을 닫았다. 은행의 부실채권 비중은 0.44%에서 1.99%로 높아져 2005년 이후 최고 수준을 기록했다.
원저우 상인들은 본래 돈이 많기로 유명하다. 이들은 제조업으로 돈을 모은 후 부동산, 주식 등에 투자해 재산을 불렸다. 그 재산을 사채시장에 쏟아부었다가 기업들이 줄도산이 나자 함께 흔들리고 있는 것이다. 톈징 원저우대 교수는 “원저우의 지하경제 규모는 1조위안 정도로 추산된다”며 “7000억위안인 제도권 금융시장보다 크다”고 설명했다. 후진타오 국가주석이 지난 3월 원저우를 직접 방문해 “금융업을 집중 육성하라”고 지시한 것도 이 때문이다.
국무원은 3월28일 원저우를 금융종합개혁시범구로 지정했다. 지하금융을 양성화해 산업자금으로 전환하겠다는 게 목표다. 이를 위해 △고리대금 업체를 은행으로 전환하고 △회사채, 비상장 주식 등 다양한 투자상품 거래를 촉진하고 △개인의 해외 투자를 허용키로 했다. 일부에서는 이를 개혁·개방으로 사유재산을 허용한 이후 최대 경제실험이라고 부른다.
그렇다면 금융개혁이 원저우, 나아가 중국의 경제를 살려낼 수 있을까. 현지 전문가들의 반응은 아직 회의적이다. 중국 정부는 금융시장 활성화의 핵심인 ‘금리 자유화’를 허가하지 않고 있다. 민간 은행을 설립해도 정부가 정해준 금리를 따라야 한다. 현재 중국의 대출금리는 연 6.56%다. 연 20%가 넘는 고리를 받아온 사채업자들이 저금리를 따를 이유가 없다. 장이리(張一力) 원저우대 상학원장(상대 학장)은 “은행으로 전환하는 소액대출 회사에 정책적인 혜택을 주게 될 것”이라며 “우리 모두가 앞길이 험난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고 말했다.
중국 정부의 관료주의도 걸림돌이다. 국무원 발표 후 원저우시 정부는 금융개혁을 위한 50개 조항을 중앙정부에 제출했지만 감감무소식이다. 인민은행 은행감독위원회 등 수많은 유관 기관의 검토를 거쳐야 하기 때문에 언제 시행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 박한철 원저우 한인상회 사무총장은 “금융개혁구 지정을 요란하게 떠들었지만 중소기업들의 상황은 달라진 게 하나도 없다”고 말했다.
원저우=남윤선 기자 inkling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