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로화 챙기려만 들고 쓰지 않으려 해"

그리스의 유로존 이탈 가능성이 가시지 않고 점점 불투명해지자 그리스 내에서 유로화 대금 결제나 지급을 꺼리는 현상이 두드러지고 있다.

특히 국가 재정의 바닥이 보이자 정부 보조금을 받는 의료 서비스와 전력 생산 등 공공부문의 일부 업무 마비도 잇따르고 있다.

그리스 아테네에서 최신 설비를 갖춘 '앙리 뒤낭' 병원의 의사와 간호사 등 직원 1천100여 명은 올해 들어 여섯 달치 급여를 아직 받지 못한 채 지난달에야 작년 말 급여를 받았다고 미국 월스트리트저널이 5일(현지시간) 보도했다.

그리스 적십자사 소유의 이 병원은 그리스 정부로부터 2천만 유로의 의료 보조금을 받지 못했고, 그 결과 은행과 제약사 등에 수천만 유로어치의 약품 등 물품 대금을 지급하지 못했다.

대금 결제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기업 간 거래 등 그리스 내 경제 활동이 일부 마비되기 시작했음을 이 병원을 통해 알 수 있다.

결제 지체 현상은 그리스 금융 위기가 시작한 2010년 조짐을 보이다가 올해 들어 만연하고 있다.

민간 부문의 피고용자 200만여 명 중 40만∼50만 명은 최근 석 달간 급여를 받지 못했고, 중소기업의 3분의 1은 원부자재 공급업체에 대금 지급을 늦춘 것으로 한 조사 결과 나타났다.

이는 그리스가 유로존(유로화 사용 17개국)을 이탈할 때 나타날 유로화 품귀 현상에 대비해 유로화를 확보하기 위한 게 아니냐는 해석을 낳는다.

개업한 지 100년이 넘는 빵집을 운영하는 디미트리스 아시마코폴로스는 "두세 달 전부터는 아무도 유로화를 쓰려 하지 않는다"면서 "모두가 은행 금고나 집에 유로화를 챙겨 보관하려고 하지 대금을 결제할 생각을 않는다"고 상황을 전했다.

그리스 정부조차도 작년 말 기준으로 체납한 물품 대금이 57억 유로에 이른다.

최근에는 부가가치세 환급금도 까다로운 절차와 규정을 내세워 지급을 미룬다는 지적을 받는다.

게다가 유럽의 양대 무역보증보험사들이 최근 대(對) 그리스 수출품에 신규 보험인수를 하지 않기로 해 그리스 경제의 위기 상황을 실감케 한다.

외국에서 주요 약품과 의료기기를 들여오는 앙리 뒤낭 병원 같은 경우는 최근 해외 공급업체들이 거래 대금의 현금 선지급을 요구해와 안팎으로 받는 고통이 커질 전망이다.

(부다페스트연합뉴스) 양태삼 특파원 tsyang@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