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의 기계산업은 중소기업 수 6000여개, 근로자 약 90만명에 이른다. 명실공히 제조업 강국 독일의 근간이다. 세계 최고로 손꼽히는 독일의 기계산업은 최근 새로운 시장으로 부상하고 있는 중국과 활발하게 교류하고 있다. 하지만 독일은 신흥시장 진출과 기술 노하우 전수라는 딜레마에 봉착해 있다. 바로 중국이 독일 기계 산업의 최대 시장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기계분야 최대의 적수로 떠오르고 있기 때문이다.

중국 기업은 이미 수년 전부터 글로벌 시장을 겨냥해 대대적인 인수·합병(M&A) 전략을 추진하고 있다. 수준 높은 기술을 갖춘 독일 기업들이 이들의 타깃이다. 독일 기업 인수를 통해 기술적 우위를 확보하고자 하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독일과 협력관계를 유지하던 중국 기업이 기술 노하우를 도용해 시장에 역공을 가하는 경우도 종종 발생하고 있다. 이러한 중국의 공세와 자국제품의 불법 복제로 독일 기업의 경계심은 한층 고조되고 있다. 최근 기술도용을 방지하기 위해 특허 출원 등 지식재산권의 중요성을 부각시키고자 하는 움직임도 활발하지만 막무가내로 밀어붙이는 중국 기업의 불법 복제를 방지하기는 사실상 역부족이다.

이런 점에서 독일의 기계제조사 만츠(Manz)가 마련한 간단하면서도 효과적인 대응책이 주목을 받고 있다. 만츠는 중국 기업의 복제를 막기 위해 부품을 나사로 고정하는 대신 접착제로 고정시키는 방식을 도입했다. 이렇게 되면 복제품 생산을 위한 분해 및 분석작업이 어렵게 된다. 아울러 고객이 제품을 자사에 돌려 줄 경우에 한해 대체 부품을 공급하고 있고, 신모델 개발 때 시제품 제조는 독일 내에서만 수행하고 있다.

이런 노력에도 제품복제를 완전히 방지할 수 없자 만츠는 점점 더 빠른 주기로 신제품을 시장에 내놓는 공세적인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 고객에게 복제품은 최신 모델이 아니라는 점을 적극적으로 알리고 있다. 만츠는 이와 같이 중국과의 경쟁에 적극적으로 대응하며 판매망을 확대해 나가고 있고, 신제품 개발을 바탕으로 기업의 지속 성장도 꾀하고 있다.

독일 기계제조 기업이 당면한 불법복제 문제는 한국 기업에도 예외가 아니다. 자본력과 법적 대응능력이 미약한 한국 중소기업은 공들여 개척한 시장을 중국의 복제품으로 고스란히 빼앗기는 경우가 많다.

기업의 경쟁력은 기술 개발을 토대로 한 제품 마케팅뿐 아니라 자사 제품에 대한 남다른 기술 노하우 관리에도 좌우된다. 기술과 정보의 지식산업 시대에 차별화된 우리 기업만의 기술 노하우 관리 방법이 필요한 시점이다.

정종태 < 유럽지역본부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