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의 유로존 탈퇴 가능성이 다시 수면 위로 떠오르면서 세계 경제에 먹구름이 드리우고 있다. 우리나라도 올해 초엔 미약하나마 하반기부터 경제 회복국면에 들어설 것으로 예상됐지만 그리스 사태가 찬물을 끼얹고 있다. 과연 남유럽 재정위기가 우리 경제에 큰 혼란을 낳지 않고 진정될 것인지 아무도 예측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남유럽 재정위기는 재정관리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일깨워줬다. 남유럽의 문제는 흔히 과도한 복지지출 때문이라고 알려져 있다. 그러나 복지지출을 줄이는 것으로만 해결될 것은 아니었다. 특히 그리스의 경우 재정통계의 불투명성이 심각한 문제로 지적됐다.

그리스 정부는 재정적자 규모를 수차례 수정, 발표했다. 2010년에는 2009년의 재정적자를 당초 국내총생산(GDP)의 13.6%에서 15.4%로 수정했다. 2011년에도 2010년의 재정적자를 당초 9.6%에서 10.5%로 조정 발표했다. 이처럼 수정이 거듭되면서 정부가 재정을 제대로 관리하지 못하고 있으며, 심지어 국민들을 속이고 있다는 의구심이 커졌다. 어느 나라에서나 정부의 신뢰도는 정책의 성공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다. 현재 많은 국민들이 어려움을 겪고 있지만 정부가 이끄는 방향으로 나간다면 위기를 극복할 수 있다는 믿음이 국민들 사이에 있어야만 정책집행도 효율적으로 된다. 그리스가 당면한 문제는 재정통계의 오류로 대표되는 국가적 신뢰상실의 문제라 할 수 있다. 정부정책만으로 경제위기를 해결할 수 있느냐 하는 의구심이 국민들 사이에 광범위하게 자리잡고 있는 것이다.

사실 우리나라도 재정통계의 틀이 1970년대 확립된 후로 시대변화를 반영하지 못하고 고답적인 형태를 유지해 왔다. 발생주의 회계기준을 재정통계에 반영하지 않고 현금주의를 고수해 온 것이 대표적이다.

회계용어에서 현금주의는 현금이 실제 오간 시점을 기준으로 회계에 반영하는 방식을 뜻한다. 반면 발생주의는 거래가 발생한 시점을 기준으로 한다. 예를 들어 보유 유가증권 가격이 하락했을 때 현금주의에서는 실제 매매가 이뤄져 현금이 오갔을 때 회계처리를 한다. 발생주의는 현금 출납이 없더라도 가격 상승이나 하락분을 순자산 변동으로 처리해 재무제표에 반영한다.

1990년대 초 OECD는 재정개혁 권고의 하나로 현금주의 회계의 문제점과 발생주의 회계의 도입 필요성에 대한 보고서를 발간하고 관련 논의를 주도했다. 또한 국제회계사협회는 공공부문위원회(현 국제공공회계기준위원회)를 만들어 국제공공회계기준(IIPSAS)을 제정했다. 이후 정부부문의 발생주의 회계제도 도입은 세계적인 추세로 자리잡았다. 2012년 현재 OECD 선진국을 중심으로 14개 국가가 발생주의 회계제도를 도입했다.

우리정부는 1999년부터 정부회계의 투명성 제고를 위해 발생주의 회계제도 도입에 대한 논의를 시작했으며 2009년부터 2년간 시범 작성했다. 10여년에 걸친 노력 끝에 2011회계연도 결산부터 발생주의 재무제표를 처음으로 작성해 지난 5월 말 국회에 제출했다.

이번 결산보고서의 특징은 이전 현금주의 원칙에선 국가 자산으로 인식되지 않았던 도로, 철도, 항만 등 사회기반시설이 발생주의 원칙에선 국가 자산으로 들어왔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인천대교는 국유재산으로 관리되는 교량 중 가장 큰 1조2400억원으로 가치가 매겨졌다.

부채 측면의 변화도 눈에 띈다. 앞으로 재정소요 부담에도 불구하고 현금주의 방식에선 적용되지 않았던 연금충당부채 등이 국가부채에 새로 포함됐다. 연금충당부채는 공무원, 군인연금 등의 연금지급액을 발생주의 회계에 따라 산출한 것이다. 기획재정부가 산출한 연금충당부채는 342조원으로 연금충당부채가 포함된 국가재무제표상의 국가부채 규모는 774조원에 달했다.

국가 통합재무제표의 작성 및 공표는 우리나라의 국가 자산 및 부채 관리를 선진화할 계기가 될 것으로 전망된다. 이를 통해 앞으로 우리나라 재정통계가 국민들로부터 확고한 신뢰를 받을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고영선 < 한국개발연구원 연구본부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