뜰에 영산홍이 만발한가 했더니 가지에 푸른 잎만 무성하다. 엊그제 봄비를 맞으며 고바야시 잇사의 ‘올빼미여, 얼굴 좀 펴게나 이건 봄비가 아닌가’라는 하이쿠(일본 시문학의 일종)를 흥얼거렸는데, 벌써 봄날은 다 갔다. 영산홍에 이어 폈던 모란과 작약의 꽃잎들도 뚝뚝 지고 있다. 다시 모란과 작약의 꽃을 보려면 한 해를 꼬박 기다려야 한다. 남도시인 영랑은 모란이 지고나면 모란 없는 날들을 하냥 섭섭해 울며 삼백예순 날을 모란이 피기를 기다린다고 적었다.

마침 오늘은 내가 아는 누군가의 생일이다. 혼자 사는 그를 위하여 누가 멸치 한 줌이라도 넣어 미역국을 끓였을까. 그를 위하여 누가 들꽃 한 송이라도 꺾어 신발 위에 올려 놓았을까. 그를 생각하니 마음이 애잔하다. 그렇다고 내 마음 어디 깊은 곳에 흐르는 음악이 멈춘 것은 아니다. 그를 떠올리며 달 아래서 붉은 포도주 한 병을 마셨다. 남은 봄꽃들의 향기는 달콤하고, 달은 높이 떠서 달빛 질펀하게 흘러내리니, 어찌 술 생각이 없겠는가!

붉은 포도주를 마시고 봄밤의 정취에 젖어서 이백의 시를 읽었다. “꽃밭 가운데 술 항아리/함께 할 사람 없어 혼자 마신다/술잔 들어 밝은 달 모셔오니/그림자까지 셋이 되었구나/그러나 달은 술 마실 줄 모르고/그림자 또한 그저 내 몸 따라 움직일 뿐/그런 대로 달과 그림자 짝하여서라도/이 봄 가기 전에 즐겨나 보세/내가 노래하면 달 서성이고/내가 춤추면 그림자 어지러이 움직인다/깨어 있을 때에는 함께 즐기지만/취하고 나면 또 제각기 흩어져가겠지/아무렴 우리끼리의 이 우정 길이 맺어/이 다음엔 은하수 저쪽에서 다시 만나세.”(‘달 아래서 홀로 마시는 술’)

술은 천고(千古)의 시름을 씻는 명약이고, 기분을 화창하게 만드는 마법의 액체다. 혼자 술을 마셔도 여럿이 마신 듯 취흥이 돋는다. 벗이 있으면 권커니 잣거니 하련만, 옆에 아무도 없다. 그게 무슨 대수랴. 사람이 없으니 달과 달 아래 제 그림자를 벗 삼아 마신다. 꽃은 피어 아름답고 술은 마셔서 흥겹다. 혼자 마신다고 취흥이 덜하지는 않다. 그 취흥에 부응하여 달 아래에서 혼자 노래하고 춤춘다. 노래하니 달은 하늘에서 서성이고, 춤추니 그림자가 덩달아 춤춘다. 달도 취하고, 그림자도 취하고, 술 마시는 자도 취하니, 취흥 속에서는 달과 그림자와 술 마시는 자가 평등하다. 이 평등함이 봄밤의 정취 속에서 쌓는 두터운 우정의 토대이리! “아무렴 우리끼리의 이 우정 길이 맺어/이 다음엔 은하수 저쪽에서 다시 만나세.” 봄밤은 이슥해도 취흥은 줄지 않는다.

흰 달은 높고 산 속 고요는 깊을 때, 이백은 술을 백병 마셔도 크게 취하지 않을 터라고 노래한다. 취하지 않으면 어떻고 또 취하면 어떠리! “고요한 산에/취해 누우면//천지가 곧/나의 금침(衾枕)인 것을!” 취흥에 젖으면 이런 절구가 절로 나온다. ‘대작(對酌)’에서는 “둘이서 마시노라니/산에는 꽃이 벌고//한 잔 한 잔 기울이면/끝없는 한 잔.//취했으니 자려네./자넨 갔다가//내일 아침 맘 내키면/거문고 안고 오게나.”라고 노래한다. 산에는 꽃 피고, 한 잔 한 잔, 주고받는 술잔은 밤새 이어진다. 취했으니 비틀비틀 일어나 잠자리를 찾아든다. 벗에게는 날 밝은 뒤에 거문고 안고 다시 오라고 이른다. 마시고 싶어 마시고 자고 싶어 잔다. 그 어디에도 마음이 부자연스런 인위에 붙잡혀 주눅 들린 바가 없다.

모란과 작약이 피는 이 세상에 살아 있다는 것은 얼마나 놀랍고 황홀한 기적인가! 살아 있는 날들의 한 순간 한 순간은 정금(正金) 같이 귀한 시간들로 수놓아진다. 봄밤은 그 정금의 시간들을 만끽하기엔 짧아서 아쉽다. 가는 봄은 잡을 수 없고 오는 여름을 막을 수도 없다. 반딧불이 몇 마리가 어둔 풀숲에서 반짝이는 것을 보았다. 반딧불이의 출현은 곧 여름이 오리라는 신호다! 해마다 거르지 않고 찾아와서 여름이 온다는 기별을 하는 반딧불이여, 기특하고 고맙구나!

장석주 < 시인 kafkajs@hanmail.net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