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3년 세일즈맨 대니 메이어는 미국 법학대학원 입학시험(LSAT)을 준비하고 있었다. 그는 대학에서 정치학을 전공했다. 남들이 하는 것처럼 전공을 살려 법률가가 되는 길을 가려했다.

LSAT 시험 전날 밤. 외삼촌이 저녁을 먹기 위해 그의 집을 찾았다. 메이어는 식사 도중 외삼촌에게 “내일 LSAT를 보지만 진짜 하고 싶은 일인지는 잘 모르겠어요”라고 말했다. 이 말을 들은 외삼촌은 반문했다. “어릴 때부터 입만 열면 온통 음식과 레스토랑 이야기만 했잖니. 레스토랑은 왜 하지 않는 거지?”

외삼촌의 말에 마음이 흔들렸다. ‘내가 하고 싶은 일을 잊고 살았구나.’ 메이어는 LAST를 포기했다. 대신 무작정 이탈리아로 날아갔다. 레스토랑을 찾아다녔다. 식당일을 하기 위해서였다. 첫 번째 식당에서 그는 게의 내장을 제거하는 허드렛일을 하며 일을 배우기 시작했다.

22년 뒤 메이어는 최고의 레스토랑 경영자에게 주는 제임스 비어드 상을 받았다. 유니언스퀘어 호스피탤리티 그룹(USHG) 최고경영자(CEO)인 대니 메이어는 뉴욕 변두리에서 ‘유니언스퀘어카페’로 레스토랑 사업을 시작해 10여개의 레스토랑과 1500명이 넘는 직원을 고용한 기업의 CEO로 성장했다. 지난해 레스토랑 잡지 ‘자갓 서베이’가 선정한 ‘가장 인기 있는 레스토랑’ 다섯 곳 중 세 곳이 유니언스퀘어카페를 포함한 USHG 소속 식당이었다.

"직원들에게 王 대접"…맛있는 음식보다 '즐거운 경험'을 판다

○‘서비스’를 넘어 ‘배려’하는 레스토랑

메이어는 이탈리아와 프랑스에서 주방 보조로 일하다 1985년 뉴욕으로 돌아왔다. 스물일곱 살 때였다. 그해 10월 그는 뉴욕에 ‘유니언스퀘어카페’라는 레스토랑을 열었다. 처음에는 더 많은 손님을 받는 데 급급했다. 그러던 중 ‘서비스’와 ‘배려’의 차이를 고민하기 시작했다. 직원들이 손님 입장에 귀 기울이고 사려 깊게 응대해주는 게 필요하다고 결론내렸다.

한 부부가 결혼기념일을 맞아 유니언스퀘어카페를 찾아왔을 때 일이다. 남자 손님은 직원에게 “냉동실에 샴페인을 놔두고 왔는데 터지지 않을까요”라고 물었다. 직원이 “냉동실에 오래 두면 샴페인은 터집니다”라고 답했다. 부부는 서둘러 자리를 일어서려했다. 이때 메이어는 손님들의 양해를 구했다. 손님이 원하면 직원을 보내 샴페인을 냉동실에서 꺼내놓도록 하겠다고 했다. 부부는 쾌히 승낙했다. 그들은 샴페인 걱정 없이 식사를 할 수 있었다. 이후 부부는 레스토랑의 단골손님이 됐다. 메이어는 “레스토랑사업은 맛있는 음식을 준비하는 것이 아니라 즐거운 경험을 선물하는 것”이라고 강조한다.

이런 노력 덕분에 유니언스퀘어카페는 1988년 ‘자갓 서베이’가 선정한 최고 레스토랑 21위에 올랐다. 메이어는 이런 성과를 기반으로 그래머시터번, 타블라, 일레븐매디슨파크 등 뉴욕의 다른 레스토랑을 세웠다.

○“고정관념을 깨라”

1995년 메이어에게 위기가 찾아왔다. ‘유니언스퀘어카페’ 같은 편안하면서도 우아한 레스토랑들이 곳곳에 생겼다. 치열한 경쟁으로 수익성은 악화됐다. 두 번째로 세운 레스토랑 ‘그레머시터번’도 어려움을 겪기는 마찬가지였다. 손님들이 서비스가 엉망이라며 항의하는 소동도 벌어졌다. 두 곳의 가게를 경영하다 보니 효율성이 떨어진 결과였다. 슬픈 일도 겹쳤다. 메이어의 아내가 쌍둥이를 조산했지만 태어난 지 8시간 만에 하늘나라로 가고 말았다.

큰일을 겪은 뒤 메이어는 자신과 같은 처지인 직원들을 배려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직원이 행복하지 않으면 회사가 잘될 수 없다는 결론이었다. ‘손님 중심의 경영방식’에서 ‘직원 중심의 경영방식’으로 전환을 시도했다. 주인의식이 있고 자부심이 넘치는 직원들이 손님을 잘 대접하고, 단골손님도 확보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메이어는 이것을 ‘합리적 배려(enlightened hospitality)’라고 부른다.

메이어는 직원들에게 자신이 존중받고 있다는 느낌을 받게 해 주려고 애썼다. 모든 직원들에게 한 달에 한 번 그룹 레스토랑 가운데 한 곳에서 식사할 수 있는 초대권을 나눠줬다. 직원들은 레스토랑을 다녀온 뒤 설문에 응하기만 하면 됐다. 이들의 설문을 경영에 참고했다. 일선 레스토랑 매니저들도 차츰 메이어의 경영철학을 이해하기 시작했다. 어느 더운 여름날 뉴욕 맨해튼의 ‘일레븐매디슨파크’ 레스토랑에서 에어컨이 고장났다. 예약손님이 100명이 넘었고 실내온도는 30도를 넘어섰을 때였다. 레스토랑 매니저는 예약담당 직원들을 위해 선풍기 두 대를 사왔다. 직원들이 친절하게 전화를 받을 수 있도록 해야겠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근처 쇼핑센터에서 건전지로 움직이는 미니 선풍기를 사 손님들에게 선물했다. 더위에 지친 손님들에게 색다른 경험을 선사하려는 ‘배려’였다.

○“OWTC 전망대에서 쉑쉑버거 팔겠다”

기업 규모가 커지자 메이어는 직원 채용에 더 많은 신경을 썼다. 그는 “우리 회사 직원은 기술적 능력이 49%, 감성적 능력이 51%가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감성적 능력은 ‘스스로 잘하고자 하는 의지’를 말한다.

주문을 받거나 음식을 만드는 등 기술적 능력은 시간이 지나면 나아질 수 있다. 하지만 감성능력은 훈련으로 키우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애초에 잘 뽑아야 한다고 믿었다. 관리자들에게 지원자들이 홀이나 지방에서 어떻게 일하는지 관찰하고 점수를 매겼다. 주로 관찰한 것은 마음을 다해 고객을 대하는지 여부였다.

이렇게 선발된 직원들은 고객 ‘배려’ 측면에서 탁월한 역량을 발휘했다. 직원들은 고객의 결혼기념일, 생일 등을 꾸준히 관리해 15만명이 넘는 고객 데이터베이스를 확보했다.

이 정보를 활용해 메이어는 같은 직종에 종사하거나 공통점이 있다고 생각되는 손님들이 서로 가까이 앉아 식사하도록 해줬다. 유니언스퀘어카페에서 한 출판업자가 식사를 하다 다른 출판업자를 보면 ‘여기는 출판업자들이 주로 점심을 먹으러 오는구나’라고 생각할 수 있도록 유도한 것이다.

메이어의 사업은 계속 번창했다. 2003년 USHG의 CEO로 취임했다. 2004년에는 버거와 핫도그, 아이스크림을 파는 매점인 ‘쉐이크쉑’을 열었다. ‘쉑쉑버거’로 유명한 이 가게는 지금도 기본 대기시간이 20~30분 걸릴 정도로 인기가 높다. 같은해 USHG는 뉴욕현대미술관(MoMA)에도 입성했다. ‘카페2’ ‘테라스5’ ‘더모던’과 같은 레스토랑과 카페들도 미술관에 문을 열었다.

대니 메이어는 최근 9·11테러 이후 뉴욕에 다시 지어진 ‘원월드트레이드센터(OWTC)’에 눈을 돌리고 있다. 이곳 빌딩 꼭대기 3개층(100~102층)을 식당으로 쓰기 위한 입찰에 참가했다. 뉴욕 지역 매체인 고다미스트는 “대니 메이어가 OWTC 전망대에서 쉑쉑버거를 팔려는 꿈을 갖고 있다”며 “전망대에 가게가 생기면 연매출 1억달러를 낼 수 있을 것”으로 예상했다.

김동현 기자 3cod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