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희년(禧年)의 정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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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배'는 고대부터 숙명적 과제…희망·겸손 함께하는 삶 바람직
이은경 < 법무법인 산지 대표변호사 eklee@sanjilaw.com >
이은경 < 법무법인 산지 대표변호사 eklee@sanjilaw.com >
진보, 보수의 맞대결을 불러왔던 ‘무상급식 논쟁’을 보면서 한 가지 생각이 들었다. 더 이상 국민들이 ‘갑의 지위에서 베푸는 듯한 선심’을 반기지 않는다는 것이다. 합리적인 관점에서 ‘부자들은 돈을 내고 가난한 사람들은 돈을 내지 않는 정책’이 왜 이토록 커다란 반감을 불러오는지 이해하기 어려웠다. 그런데 ‘사회정의’ 그리고 이에 속한 ‘분배문제’에 대해 ‘패러다임’이 바뀌고 있는 것을 몰랐던 것이다. 나는 “리더로 불리는 사람들이 기득권 시비에 휘말리지 말고 더욱 고단한 삶, 더욱 베푸는 삶을 보여줘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런데 이에는 분명히 한 가지 함정이 있는 것이다. 소위 베푸는 자들은 ‘나의 희생과 헌신’을 알아주기 바라는 공명심이라는 덫을 피하기 어렵다. 그리고 수혜자들은 어떤가? 그들은 베품을 당하는 것을 이제는 원하지 않는다. 자신의 권리를 찾고 싶어 한다.
나는 무엇이든 결론을 내놓아야 할 ‘분배논쟁’ 앞에서 이스라엘의 고대법 정도로 생각했던 ‘희년(禧年)제도’를 떠올려 봤다. 50년마다 돌아오는 희년은 모든 것의 ‘원상회복’을 선포하는 해이다. 땅의 소유권을 원래 주인에게 되돌려주고, 모든 빚진 것을 탕감해 주고, 노예들은 가족의 품으로 돌아갔다. 그렇다고 ‘공산 개념’은 아니다. 최초에 분배받아 내 것으로 지명된 땅, 그것의 원소유권이 회복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그 사이에 추가로 축적된 부 그리고 실은 당초 내 몫으로 분배받은 것마저도 ‘소유’보다는 ‘관리’ 개념이 더 강했을지도 모르겠다.
물론, 나는 이 희년제도의 도입을 말하는 것은 절대 아니다. 그러나 무한자유, 무한소유, 무한경쟁의 그늘에 가리운 우리의 현실은 어떠한가? 오죽하면 취업을 위해서는 연애, 결혼, 출산마저 포기해야 하는 ‘3포 세대’라 하겠는가? ‘부의 건강한 이동과 효율적인 배분’은 차기 리더의 숙명적 과제 아니겠는가?
최근 우리나라도 보편적 복지의 찬반 논쟁, 사회적기업과 동반성장 이슈, 재벌, 정치인 그룹의 재산 환원 서약 등 변화의 조짐은 이는 것 같은데 극도의 탐욕도, 극도의 빈곤도 없는 세상, 인간답고 행복한 세상의 이정표를 희년의 정신으로부터 찾아보면 어떨까?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의 부의 이동은 희년의 ‘원상회복’을 실천하는 것이다. 빈곤, 차별, 학대, 공포 등 인간의 존엄성을 위협하는 것을 제거해 나가는 노력은 희년이 주는 ‘자유’의 개념을 확산한다. 그리고 가난의 대물림을 끊고 소외계층을 두텁게 지원하는 정책은 희년이 주는 ‘면제’의 정신에 부합한다.
나는 50년 자유경쟁을 허용하되 주기마다 출발선을 다시 정리해 줬던 이 고대정신을 한번쯤 재해석해 보고 싶었다. ‘없는 자’에게는 희망을, ‘있는 자’에게는 겸손을 주는 세상, 결국은 모두 다 행복한 삶을 꿈꾸면서 말이다.
이은경 < 법무법인 산지 대표변호사 eklee@sanjilaw.com >
나는 무엇이든 결론을 내놓아야 할 ‘분배논쟁’ 앞에서 이스라엘의 고대법 정도로 생각했던 ‘희년(禧年)제도’를 떠올려 봤다. 50년마다 돌아오는 희년은 모든 것의 ‘원상회복’을 선포하는 해이다. 땅의 소유권을 원래 주인에게 되돌려주고, 모든 빚진 것을 탕감해 주고, 노예들은 가족의 품으로 돌아갔다. 그렇다고 ‘공산 개념’은 아니다. 최초에 분배받아 내 것으로 지명된 땅, 그것의 원소유권이 회복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그 사이에 추가로 축적된 부 그리고 실은 당초 내 몫으로 분배받은 것마저도 ‘소유’보다는 ‘관리’ 개념이 더 강했을지도 모르겠다.
물론, 나는 이 희년제도의 도입을 말하는 것은 절대 아니다. 그러나 무한자유, 무한소유, 무한경쟁의 그늘에 가리운 우리의 현실은 어떠한가? 오죽하면 취업을 위해서는 연애, 결혼, 출산마저 포기해야 하는 ‘3포 세대’라 하겠는가? ‘부의 건강한 이동과 효율적인 배분’은 차기 리더의 숙명적 과제 아니겠는가?
최근 우리나라도 보편적 복지의 찬반 논쟁, 사회적기업과 동반성장 이슈, 재벌, 정치인 그룹의 재산 환원 서약 등 변화의 조짐은 이는 것 같은데 극도의 탐욕도, 극도의 빈곤도 없는 세상, 인간답고 행복한 세상의 이정표를 희년의 정신으로부터 찾아보면 어떨까?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의 부의 이동은 희년의 ‘원상회복’을 실천하는 것이다. 빈곤, 차별, 학대, 공포 등 인간의 존엄성을 위협하는 것을 제거해 나가는 노력은 희년이 주는 ‘자유’의 개념을 확산한다. 그리고 가난의 대물림을 끊고 소외계층을 두텁게 지원하는 정책은 희년이 주는 ‘면제’의 정신에 부합한다.
나는 50년 자유경쟁을 허용하되 주기마다 출발선을 다시 정리해 줬던 이 고대정신을 한번쯤 재해석해 보고 싶었다. ‘없는 자’에게는 희망을, ‘있는 자’에게는 겸손을 주는 세상, 결국은 모두 다 행복한 삶을 꿈꾸면서 말이다.
이은경 < 법무법인 산지 대표변호사 eklee@sanjilaw.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