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값에도 안 팔려…조선업계 '눈물의 세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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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운시황 악화로 선박 인수 포기 속출
수주 잔량 6년來 최저…인도 지연 요구도
수주 잔량 6년來 최저…인도 지연 요구도
대우조선해양은 2007년 수주해 건조를 끝낸 32만100DWT급 VLCC(초대형원유운반선) 2척의 새주인을 찾고 있다. 대만 해운사 TMT가 척당 1억6000만달러에 발주한 선박들이다. TMT는 해운시황이 나빠지고 자금조달이 쉽지 않자 배값을 내지 않은 채 인수를 포기했다. 선가가 절반 가까이 떨어져 대우조선은 ‘속앓이’를 하고 있다.
○해운시황 바닥… 절반 값에 세일
해운사들이 발주한 선박의 인수를 포기하는 사례가 잇따르면서 국내 조선업계에 비상이 걸렸다. 상선시장 침체가 지속되는 가운데 발주 취소와 인도 지연 물량이 늘어나고 있어서다. 헐값에 팔려고 해도 새주인 찾기가 쉽지 않다는 게 조선사들의 하소연이다.
VLCC 시장 가격은 척당 약 9500만달러 수준으로 2007년보다 40%가량 급락했다. 대우조선해양은 최소 9000만달러를 받겠다는 생각이지만 선사들은 이보다 낮은 가격을 제시하고 있어 협상이 더디게 진행되고 있다. 입찰에 참여한 선사들은 6700만~7900만달러를 제시한 것으로 전해졌다.
가격이 기대치를 밑돌면서 업계에서는 대우조선해양이 이들 선박을 자회사인 DK마리타임에 인도해 자체적으로 운영하는 방안도 검토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TMT는 착수금으로 선가의 10%만 지불해 인수 취소에 따른 대우조선해양의 매출 감소가 불가피하다.
앞서 STX조선해양은 이달 초 그리스 트로전마린이 인수를 포기한 5만7000DWT급 벌크선 3척을 재매각했다. 2010년 척당 4000만달러에 수주한 선박으로 재매각 가격은 40%가량 낮은 약 2500만달러로 알려졌다.
STX관계자는 “선수금을 절반가량 받았고 재매각 가격도 알려진것 보다 높다”고 말했다.
○수주 잔량도 ‘빨간불’
해운사들이 선박 인수를 포기하는 것은 공급 과잉과 경기 부진에 따른 운임 하락으로 운영 선대를 늘릴 여력이 없어서다.
이달 초 이스라엘 짐라인도 2007년 삼성중공업에 발주한 1만2600TEU(1TEU는 20피트 컨테이너 1개)급 컨테이너선 9척의 납기 연기를 요청했다. 짐은 2009년에도 해당 선박의 인도시기를 2012년에서 2015년으로 한 차례 늦췄고, 이번에 2018년으로 3년 더 연장하는 방안을 제안한 것으로 알려졌다. 계약 당시 금액은 척당 1억7000만달러, 총 15억3000만달러였다.
짐라인은 현대삼호중공업에 발주한 8800TEU급 선박 4척의 인도시기도 2015년에서 추가 연장하는 방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조선업계 관계자는 “유동성 위기에 빠진 선사들이 선수금 지급까지 늦춰달라고 요구하고 있다”며 “장기적인 관계를 유지해야 하는 고객이기 때문에 지금처럼 시황이 어려울 때 요청을 일정 부분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시황 침체와 수익성 악화로 그렇지 않아도 어려움을 겪고 있는 국내 조선사들은 난감해하고 있다. 영국 조선·해운 분석기관 클락슨에 따르면 지난 3월 말 기준 글로벌 수주 잔량은 1억970만CGT(표준화물환산톤수)로 2006년 1월 이후 가장 적은 수치를 기록했다. 조선소의 안정적인 운영을 위해 통상적으로 필요한 2년치 일감을 확보하기 어려운 수준까지 수주 잔량이 감소했다는 분석도 있다.
미국 리먼브러더스 파산 직후인 2009년 초 벌어진 발주 취소와 인도 지연 사태가 재연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짐과 TMT는 2009년에도 인도시기를 지연하거나 계약을 취소한 전력이 있다.
홍성인 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선박금융의 80%가량을 담당하는 유럽 재정위기와 해운시황 악화가 맞물려 인도 연기가 더 많아질 수 있을 것”이라며 “다만 2009년보다는 상황이 낫고 선사 측에도 피해가 가기 때문에 수주 취소는 많지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고 말했다.
이유정 기자 yj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