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으로 직장 경력이 대학 학점으로 인정된다. 업무 능력을 높이기 위해 직업 훈련원에서 받는 기술 연수도 일정한 요건을 갖추면 대학에서 받는 수업처럼 학점으로 인정된다. 한국경제신문은 지난 23~24일 경기도 고양시 킨텍스에서 열린 ‘2012 대한민국 고졸인재 잡 콘서트’ 성과를 정리하는 결산좌담회를 25일 개최했다. 좌담회에서 정부 측은 고졸 취업 희망자들의 최대 관심사인 ‘선(先) 취업 후(後) 진학’ 제도 정착을 위해 이 같은 방안을 새로 도입하는 등 대대적인 제도 개선에 나서겠다고 밝혔다.

고졸 인재를 확보하려는 기업과 실무 능력을 갖춘 고교생 등 2만여명이 모인 잡 콘서트는 우리 사회가 학벌 사회에서 능력 사회로 전환하는 계기를 만들었다는 평가가 나왔다. 정부 쪽 인사인 김응권 교육과학기술부 차관과 송종호 중소기업청장, 산업계를 대표한 원기찬 삼성전자 부사장(인사팀장), 학계 조남철 한국방송통신대 총장, 특성화고 현장의 부천공고 박상협 교장(경기지역특성화고교장협의회 회장) 등 좌담회 참석자들은 ‘신(新) 고졸시대’를 위한 사회 분위기를 더욱 확산시켜야 한다고 지적했다.

ADVERTISEMENT

▶사회=이번 잡 콘서트가 최근의 고졸 취업 열풍을 잘 보여줬다는 평가다.

▶송종호 중기청장=고졸 취업이 대세라는 것은 숫자로도 확인된다. 2008년 중소기업에 가는 고졸 인재가 1만5000명이었는데 올해 3만5000명으로 늘었다. 덕분에 매번 모자라던 외국인 인력은 올해 7500명이 남았다. 이번 잡 콘서트에는 대기업과 금융회사 등이 참여하면서 고졸 취업이 단순히 양적으로 늘어난 게 아니라 질적으로도 향상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줬다.

▶김응권 교육과학기술부 차관=이번 잡 콘서트의 가장 큰 의미는 실제 구직자인 학생들이 말로만 듣던 대기업과 은행 취업 체험을 해보고 ‘내가 갈길이 이거구나’라고 느꼈다는 점이다. 진학이냐, 취업이냐 기로에 있던 학생들이 현장에 와서 진로에 대한 생각을 굳혔다는 얘기를 많이 들었다. 정부와 언론이 메시지를 계속적으로 주는 게 중요하다.

ADVERTISEMENT

▶박상협 부천공고 교장=그동안 고졸 인력을 위한 행사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이번에는 참가 기업들이 학생 하나하나를 붙잡고 상담하면서 자기소개서 쓰는 법을 가르쳐 주는 등 질적으로 달랐다. 기간이 이틀밖에 안 됐다는 점이 가장 아쉬웠다.

▶사회=고졸취업 확대를 위해 사회적으로 개선할 점과 나아갈 방향은 무엇인가.

▶원기찬 삼성전자 부사장=행사장에 오신 많은 분들이 ‘내년에도 이 행사를 꼭 해달라’고 했다고 들었다. 하지만 내년은 너무 먼 얘기다. 이번에 형성된 분위기를 이어가려면 연중 캠페인을 해야 한다. 이런 움직임이 4~5년은 지속되고 발전돼야 진정한 트렌드로 자리잡을 수 있을 것이다.

ADVERTISEMENT

▶조남철 한국방송통신대 총장=이명박 정부 마지막 해에 와서야 고졸 취업이 확 달아오른 것에 대해 걱정하는 목소리도 있다. 정권이 바뀌면 열기가 식을 수 있다는 우려다. 하지만 고졸 취업의 필요성에 대한 인식이 사회 전체적으로 퍼져 있기 때문에 다음 정부는 더 중요하게 다룰 것으로 기대한다.

▶사회=학력에 따른 차별과 편견은 여전해 아직 갈길이 멀다는 지적도 있다.

▶원 부사장=‘대졸’ ‘고졸’ 이런 용어를 쓰는 것부터가 선을 긋는 것이다. ‘고졸 시대’ 대신 ‘학력 불문 개인 경쟁력 시대’라는 말을 쓰면 어떨까. 이번 잡 콘서트에 온 학생들이 ‘선 취업 후 진학’에 큰 관심을 보였다. ‘선직후학(先職後學) 시대’ 같은 말도 적극적으로 써보자.

ADVERTISEMENT

▶박 교장=실질적인 대우도 중요하다. 현재는 많은 기업들이 고졸 사원을 뽑으면 평생 고졸 취급을 한다. 보수도 안 올려주고 진급 역시 어렵다. 공부를 잘해도 집안 형편이 어려워서 진학을 포기하고 취업하는 학생들이 많다. 그런 학생들은 4년간 일하면서 배우는 게 대졸 사원보다 나을 수 있다. 그렇다면 적어도 연봉은 비슷하게 줘야 하지 않겠나.

▶조 총장=고졸 취업자가 나중에 방송대나 사이버대에서 학위를 따는 경우도 많다. 하지만 똑같이 학위를 따더라도 일반 4년제 대학을 나온 학생들과 다르게 대접받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김 차관=채용이나 임금 관행에 있어서 대졸·고졸 차별을 없애는 게 근본적인 해결책이라고 본다. 4년간 직장에서 일을 했다면 분명히 배우는 게 많을 것이다. 그것을 제대로 인정해주는 문화가 없었다.

▶사회=정부와 기업, 학교가 더욱 긴밀하게 협조해야겠다.

▶박 교장=특성화고 학생들이 지금 가장 관심을 갖는 부분은 ‘선 취업 후 진학’이다. ‘대학은 나중에 가도 된다’는 확신이 있으면 취업 활동을 더 열심히 하겠다는 학생이 많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특성화고 학생들이 많이 취업하는 안산이나 창원 공단에는 대학이 없다. 일 마치고 한 시간씩 이동해서 수업에 가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대학 교수들이 공단에서 바로 강의할 수 있게끔 해주면 얼마나 좋겠나.

▶송 청장=경기 안산에 중소기업연수원이 있다. 안산지역 직장인들이 역량을 높이기 위해 많이 교육을 받는다. 이런 연수를 학점으로 인정해 주는 방안은 어떤가.

▶김 차관=바로 그걸 위해 ‘선행학습 인정제’를 준비하고 있다. 고졸 직장인이 나중에 대학에 갈 때 산업체에서 쌓은 전문적인 경력을 학점으로 인정하자는 것이다. 방송대에서 지금 구체적인 실행 방안을 짜고 있다. 지금 대학생들이 기업에서 인턴을 하는 것도 학점으로 인정해주고 있으니 직장인이 현장에서 축적한 경험 또한 학점으로 인정할 수 있을 것이다. 산업 단지에 대학을 짓는 ‘산업 단지 캠퍼스’도 현재 5곳이 가동되고 있다.

▶원 부사장=삼성은 직원들이 직장에 다니면서 학사·석사 학위를 딸 수 있도록 삼성전자공대 등 사내대학을 운영하고 있다.

▶김 차관=사내대학 제도도 설치 기업뿐 아니라 협력업체 임직원들까지 다닐 수 있도록 개선된다. 대기업은 협력업체가 공급하는 부품의 품질뿐 아니라 협력업체의 인재 개발에도 함께하는 것이 진정한 상생이라고 하겠다.

▶조 총장=중소기업은 사내대학을 설치할 인적·물적 자원이 부족하다. 방송대나 사이버대와 같은 원격대학과 함께하는 것이 해결책이 될 수 있다. 이론 강의는 원격으로 받고, 실무는 산업 현장을 활용하자는 것이다. 사내대학 제도를 개선하면서 중소기업과 원격대학이 공동으로 (사내)대학을 설립할 수 있는 근거도 만들어주면 좋겠다.

▶박 교장=기업에 바라는 것이 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곧바로 취업한 학생들은 말 그대로 병아리다. 회사 선배들이 후배들에게 좋은 얘기를 많이 해주면 얼마나 좋겠느냐만 실제로는 정반대라는 게 학생들의 얘기다. 선배들이 다짜고짜 ‘한 살이라도 어릴 때 빨리 관두고 공부해서 대학가라’고 한단다. 그런 조언 아닌 조언을 자꾸 듣다 보면 어느새 자존감도 낮아지고 결국 퇴사하는 경우가 많다. 기업에서는 지금 다니고 있는 선배들부터 잘 가르쳐야 한다.

▶송 청장=그 점은 중소기업을 대표해서 부끄럽다. 사과드린다. 경영자들과 만날 때 꼭 전달하겠다.

"고졸 직장인 軍문제 정부가 해결해줘야"

고졸 인재의 취업을 가로막는 현실적인 큰 걸림돌은 남자의 경우 군(軍) 문제다. 이번 좌담회에서 참석자들은 군 문제 해결에 대한 정부의 적극적 역할을 당부했다.

김응권 교육과학기술부 차관은 “군 문제는 기업에 어려운 문제”라며 “정부가 고졸 취업자도 대학생과 똑같이 4년간 입영을 연기할 수 있는 제도를 만들었지만 아직 충분치 않은 것 같다”고 말했다. 김 차관은 “군 미필자를 뽑지 않으면 고졸 취업은 반쪽밖에 안 된다”며 “미필자를 뽑아서 들어가는 비용이나 인사 관리상의 문제가 있다면 정부에 건의해달라”고 말했다.

송종호 중기청장은 산업기능요원 제도 개선안에 대해 설명했다. 송 청장은 “산업기능요원을 지난해 5500명에서 올해 7000명으로 늘렸고 대상 사업장 요건도 10인 이상 기업에서 5인 이상 기업으로 확대해 벤처기업도 가능하도록 했다”고 말했다. 그는 특히 “과거에는 대학 졸업자도 기능사 자격을 따면 이 제도를 이용할 수 있었지만 앞으로는 특성화고 졸업자로 자격을 한정해 대학생들이 군 기피 수단으로 이용하는 것을 원천봉쇄하겠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박상협 부천공고 교장은 “그렇게 되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다”며 제도 확대를 거듭 요청했다.

정리=정태웅/강현우 기자 hk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