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구 세계가 앞으로 일본식 장기 불황에 빠질 가능성이 있습니다.”

스티븐 킹 HSBC 글로벌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한국경제신문과의 단독 인터뷰에서 이같이 말했다. 그는 지난달 말 내놓은 2분기 글로벌 거시경제 전망 리포트에서 세계경제를 ‘새싹은 푸른데 뿌리는 약한’ 상태로 묘사했다. 미국 등의 일부 통계지표가 호전되는 양상을 보이고 있지만 세계경제의 근본적인 체력이 보강된 게 아니기 때문에 언제라도 다시 위기가 부각될 수 있다는 지적이었다.

보고서 발표 이후 세계경제는 그의 예측이 맞았다는 증거를 보여주고 있다. 그리스의 유로존 탈퇴 가능성이 높아졌고 한국을 포함한 아시아지역 증시에서 돈이 대거 빠져 나갔다. 최근 한국을 찾은 그를 한국경제신문이 단독으로 인터뷰해 세계경제의 향방을 물었다.

◆“유럽 전체에 신용경색 올 수도”

가장 초미의 관심사는 유로존이다. 그는 “유로존이 불황에 빠질 것이 거의 확실하다”고 했다. “지금까지는 재정적자를 키워 온 남유럽에 대한 비판적인 분위기가 있었다”며 “마치 이들이 임금을 낮추고 적자폭을 줄이면 문제가 해결될 것처럼 보는데 그렇지 않다”고 했다.

그는 북유럽을 비롯해 유로존 전체의 위기로 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첫째 원인으로 독일 등 북유럽도 남유럽과의 교역량 감소로 인한 경제위기를 겪게 된다고 지적했다. 둘째 원인으로는 유럽국가들의 국채 가격 하락을 꼽았다. 그는 “유럽 전체에 대해 신용경색(credit crunch)이 올 수 있다”고 예상했다. 킹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유럽인들 누구나 생활이 힘들다고 느끼게 될 것”이라고 표현했다.

◆“느슨한 재정통합 필요”

정치·경제학자들은 현재 유로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으로 크게 두 가지를 내놓는다. 하나는 재정통합 등을 이뤄내 유로존의 결속력을 더 강화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유로존을 언제라도 탈퇴가 가능하게 만들어 사실상 개별국가로 환원하는 것이다.

킹의 해법은 전자였다. “유로존을 깨는 것은 매우 비현실적”이라며 “통합도 굉장히 힘들고 어려운 일이지만 둘 중 하나를 해야 한다면 다소 느슨한 형태로라도 재정통합을 이뤄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를 ‘공동재정클럽(fiscal club)’이라고 표현했다. 완전한 재정통합(fiscal union)보다 조금 더 낮은 단계로, “세수를 쓰려고 하는 만큼 경제 주권을 잃게 되는 클럽”이라고 그는 설명했다.

그는 유로존에 잠재한 문제에 대해 ‘국 가 간 불균형’을 지적했다. 예컨대 유럽중앙은행(ECB)이 통화정책을 쓸 때 ‘유로존 전체의 물가상승률을 평균 2%로 유지한다’는 목표를 세운다면, 일부 성장이 정체된 국가들은 0%로 물가상승률을 유지해야 하고 독일 등은 3~4%대를 유지해야 한다. 세수도 나라마다 제각각이다. “국가 간에 노동력이 자유롭게 이동하는 상황에서 이런 식의 ‘평균 맞추기’ 정책은 지속될 수 없다”는 게 그의 견해다.

◆“장기경제침체(스태그네이션) 온다”

그는 재정 확대를 통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믿는 사람들이 “틀렸다”고 주장했다. 그는 “자극(stimulus)의 효과를 너무 낙관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정부 부채가 증가하는 것은 경제가 성장하려는 힘이 약하기 때문이지, 재정을 더 많이 풀어서 뭔가가 더 좋아질 것이라고 보는 것은 잘못된 기대”라는 것이다.

일본을 그 예로 들었다. 일본은 지난 20년간 장기적으로 매우 낮은, 연 1% 이하 성장률을 기록했다. 제로금리 통화정책을 쓰는데도 불구하고 경제가 살아날 기미는 보이지 않았다. 킹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일본과 미국 유럽 등 서구경제에는 네 가지 비슷한 점이 있다”고 했다. 네 가지는 △취약한 금융시스템 △정부부채 증가 △낮은 채권금리 △의지부족(unwillingness)이다. 여기에 고령화사회로 접어드는 것도 일본과 서구의 비슷한 점이라고 꼽았다.

그는 그렇다면 앞으로 서구 경제가 일본처럼 장기 불황에 빠질 가능성을 묻자 반드시 그렇게 된다는 뜻은 아니라고 설명했다. 이유로는 신흥시장(이머징마켓)의 성장으로 인한 영향을 꼽았다. 신흥시장과의 교역량이 증가하고 투자에 성공하는 이들도 있어 서구 경제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전체적으로 “서구의 근로자들은 굉장히 (외부 충격에) 취약해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자본이동이 자유로워지고 실업률이 증가해 임금은 낮은 수준을 유지하겠지만, 상품가격은 오르고 물가상승률이 높아지며 정부부채 상환이 어려워지는 힘든 상황에 처할 수 있다”고 그는 예상했다. 요컨대 ‘스태그네이션’에 빠지게 된다고 그는 강조했다.

◆“한국, 세계화 장점 찾아야”

그는 이 같은 상황에서 한국 경제를 어떻게 전망하는지 묻자 “한국도 가계부채 문제가 있지만, 서구처럼 큰 문제는 아니다”고 말했다. 주택담보대출비율(LTV)과 총부채상환비율(DTI) 등의 규제를 도입해 놨기 때문에 담보대출비율이 100%를 넘었던 미국의 서브프라임과는 부채 성격이 다르다는 이유에서다.

그는 한국이 서구경제 침체로 인한 세계화의 부정적 영향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신 실크로드’에 주목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신 실크로드는 아시아 중동 아프리카 등 새롭게 떠오르는 신흥 시장을 뜻한다. 그는 “앞으로 5년 이상 서구경제와 신흥경제의 비 동조화(디커플링)가 예상된다”며 “한국 경제가 이 시기에 잘 적응해야 할 것”이라고 조언했다.

이상은 기자 se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