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시장에 ‘반(反) 메르켈 기류’가 빠르게 형성되고 있다. 그 중심에는 좌파로서는 17년 만에 집권에 성공한 프랑수아 올랑드 프랑스 대통령이 있다. 올랑드는 지난 3월 유럽연합(EU) 25개국 협의를 통해 완성된 독일 주도의 ‘신(新) 재정협약’에 추가로 성장 엔진을 장착해야 한다고 보고 있다. 이를 위해 유로본드의 조기 도입을 강력하게 주장하고 있다.

지난 23일 열린 EU 특별 정상회담에서도 유로본드의 조기 도입을 강하게 제시했지만 독일과 네덜란드의 반대로 무산됐다. 하지만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의 단호한 주장은 독일 외부는 물론이고 기민당 내부에서도 반대 의견이 나오는 상황이라 얼마나 유지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메르켈 총리가 주도한 신재정협약은 25개국만 협의했을 뿐이다. 의회 비준이 남아 있는 상황에서 지금처럼 반 메르켈 기류가 형성되면 12개국 이상의 비준을 이끌어내기 어렵다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그렇다고 해서 현재 상황에서 성장에 무게를 두는 내용의 재협상을 시작하는 것도 문제다. 그리스 총선을 앞두고 급진좌파정당인 시리자에 더 많은 표를 안겨주는 결과를 가져다주기 때문이다. 시리자는 “긴축을 반대하고, 재협상이 없을 경우 유로존(유로화사용 17개국) 탈퇴도 불사하겠다”는 주장으로 표를 얻었기 때문에 자칫 이들을 인정하고 재협상을 시작할 경우 신재정협약의 근간을 흔들 수 있는 연쇄반응이 나올 수도 있다.

이 같은 진퇴양난의 상황에서 메르켈 총리가 보여줄 수 있는 카드는 많지 않다. 전문가들은 당장 메르켈 총리가 선제적 대응을 하기보다는 다음달 17일 열리는 그리스 총선 때까지 모호한 자세를 유지하려 할 것으로 보고 있다. 결국 시장도 당분간 혼조국면이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한국 증시가 더 많이 하락하는 이유

한국 증시는 그리스 소식에 가장 민감하게 움직일 수밖에 없다. 전자 거래가 잘 발달돼 익명성이 보장되다 보니 외국인들의 선호도가 높다. 외국인들의 매수세도 강하지만 빠져나갈 때는 빠르게 이탈하는 특성을 가지고 있다. 이 때문에 이번 위기 상황에서 하락폭은 유럽 위기국 수준에 육박하고 있다.

최근 외국인들의 매도 상위국을 보면 영국과 룩셈부르크가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결국 유럽계 자금의 이탈이 최근 4조원에 달하는 외국인 매도의 핵심이다. 이익은 천천히 반영하고 손실은 공격적으로 반영해야 하는 회계의 일반 원리 때문에 외국인 매도는 당분간 피할 수 없을 전망이다. 유럽 은행들은 결산보고서를 만들기 전에 그리스의 디폴트(채무불이행) 위기를 어느 정도 반영해 둬야 하기 때문이다.

씨티그룹은 최근 보고서에서 그리스의 유로존 이탈 가능성은 75%에 달하며 이르면 내년 1월께 퇴출이 불가피하다고 전망했다. 차기 정권이 들어선다고 해도 약속을 지킬 수 있는 뾰족한 수가 없다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유럽 은행들은 높아진 디폴트 위험에 공격적으로 손실 상각을 해야만 하는데, 아쉽게도 유럽의 은행들은 상각을 수행할 만한 충분한 자본금 여력이 없다. 이미 헤어컷(손실 분담)을 통해 그리스 채권에 대한 손실을 인식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다음달 말까지 핵심 자기자본비율인 9%를 맞춰야 하는 상황이다. 결국 리스크를 완충할 만한 자본금이 충분하지 않다면 투자자산을 회수해서 부족한 자기자본비율을 메워야 한다. 이에 따라 연초 신흥시장에 투자했던 자산을 대거 청산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막연한 두려움은 피해야

당분간 지수는 방향성을 정하지 못하고 박스권을 맴돌 것으로 전망된다. 오르면 매도하고 과도하게 하락하면 매수하는 전략이 바람직하다. 그리스 문제는 총선 이후에도 증시의 발목을 잡는 요인이 되겠지만 이미 주가에는 상당부분 반영됐다. 그렉시트(Grexit·그리스의 유로존 이탈)를 과소평가하면 안되겠지만 과대평가도 경계해야 한다.

유럽 은행들도 2년 넘게 그리스 문제에 시달리면서 리스크 요인을 상당부분 완충했다. 지난 1분기 실적발표 때 은행들은 이미 75% 이상을 상각처리했고 나머지도 장기대출 프로그램(LTRO)을 통해 유동성을 확보해 놓은 상태다. 그리스가 유로존에서 이탈한 이후 뱅크런이 발생한다면 유럽중앙은행(ECB) 차원에서의 지급보증을 재가동해 해결할 수 있다. 또 3차 LTRO의 시행이나 혹은 금리 인하 등도 ECB가 가동할 수 있는 중요한 카드다. 이미 반영된 뉴스에 의해 주가가 급락하면 매수 기회로 삼아야 한다. 다만 강한 상승탄력을 기대하기 어렵고 간헐적으로 악재에 시장이 흔들릴 수 있다는 점에 주의해야 한다. 적당한 반등 이후 단기조정을 염두에 둔 현금화 전략도 병행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