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이상 고온으로 전기 사용량이 급증하고 있다. 올 들어 벌써 전력예비율이 10% 아래로 떨어진 날이 36일이나 된다. 게다가 원전 가동까지 중단되는 일도 발생하고 있어, 이번 여름에 또 다시 블랙아웃(대규모 정전사태)이 올 수 있다는 우려마저 제기되고 있다.

지난해 9월 우리는 처음으로 블랙아웃을 경험하면서 전기의 소중함을 실감했다. 암흑천지의 차원을 떠나 우리 생활의 모든 것이 마비되는 지경에 이르렀다. 아마 전기를 발명한 토머스 에디슨도 자신의 발명품이 현대 인류의 삶에 이처럼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라고는 상상조차 못했을 것이다.

전기는 지금의 최첨단 인류문명을 만들어낸 핵심요소다. 조명과 동력, 냉난방, 문화생활, 정보통신 등 우리 삶의 모든 것들이 전기를 기반으로 하고 있다. 전기가 현대문명에서 이처럼 중요하게 된 가장 큰 이유는 에너지의 공간이동을 가능하게 했기 때문이다.

토머스 에디슨이 1882년 수력발전소를 처음 만들어 실용화를 시작했을 때만 해도 에너지의 공간이동은 쉽지 않았다. 이때 생산된 직류전기는 발전소 부근에서 그의 또 다른 발명품인 백열전구로 불을 밝히는 정도가 고작이었다.

하지만 그의 실험실에서 조수 역할을 하고 있었던 니콜라 테슬러가 1894년 교류전기를 발명함으로써 그 가치는 크게 달라졌다. 교류전기는 전선을 통해 에너지를 순식간에 멀리까지 보내는 것을 가능하게 했다. 지금과 같은 대도시가 만들어지고 현대문명이 꽃 피울 수 있게 된 것은 교류전기로 인한 초고속 에너지 공간이동 기술 덕분이다.

엄격히 말하면 전기는 에너지라기보다 에너지 운반체다. 에너지가 자동차라면 에너지 운반체는 고속도로와 같은 것이다. 다시 말하면 수력, 화력, 원자력 등의 에너지를 먼 곳까지 이동할 수 있게 해주는 도로가 전기다.

엄청난 에너지가 발전소에서 생산돼 전기라는 도로를 통해 멀리 떨어진 곳까지 빠른 속도로 공급될 수 있기 때문에 지금과 같은 도시문명이 가능하게 됐다.

전기라는 에너지 운반체가 갖는 단점은 많은 손실을 동반한다는 점이다. 보통 발전과정에서 60%, 송전과정에서 10% 정도의 에너지가 손실된다. 소비지까지 도달한 에너지는 조명이나 냉난방과 같은 다른 용도로 사용되는 과정에서 또 다시 많은 양이 손실된다.

예를 들어, 백열전구에서 빛이 만들어질 때는 95%가 열로 변해 버려진다. 발광다이오드(LED) 조명이 백열전구보다 에너지 효율이 좋은 이유가 열로 가는 많은 양을 빛으로 바꿀 수 있는, 즉 열 손실을 줄일 수 있기 때문이다.

만약 백열전구에서 나오는 빛 에너지를 발전과 송전, 그리고 전환과정에서 손실된 것을 모두 고려하면 발전에 사용된 에너지의 채 2%에도 미치지 못한다. 그래서 전기는 조금만 낭비해도 발전에 사용된 엄청난 에너지가 낭비되는 것과 같다.

다시 말하면, 불필요한 조명이나 냉난방으로 적은 양의 전기를 낭비하는 것은 그 수십 배에 달하는 화력, 수력, 원자력 등과 같은 발전 에너지를 버리는 것과 같다. 여기에 발전과 송전 설비, 그리고 환경 비용까지 고려하면 낭비는 엄청나다.

또 다시 블랙아웃을 걱정해야 하는 지금,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대책은 불필요한 전기 소비를 줄이는 것이다. 특히 전기는 많은 손실을 동반한 에너지 운반체이기 때문에 절약의 중요성은 더욱 커진다. 1%의 절약으로 100% 이상의 발전 에너지와 시설 및 환경 비용을 줄일 수 있는 것이 전기다.

박석순 < 국립환경과학원장·이화여대 환경공학 교수 ssp@ewha.ac.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