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로존이 긴축 아닌 성장으로 선회할 움직임이다. 지난 주말 열린 주요 8개국(G8) 정상회의도 “시급한 임무는 성장과 일자리를 촉진하는 것”이라고 선언했다. 유로존 위기 탈출의 해법으로 허리띠 졸라매는 긴축을 줄곧 강조해온 메르켈 독일 총리에 맞서, 올랑드 프랑스 대통령은 돈을 풀어 성장부터 도모해야 한다고 반기를 들었다. 오는 11월 대선을 치를 오바마 미국 대통령도 올랑드에 맞장구 쳐주는 양상이었다.

메르켈 총리는 “독일과 프랑스는 다른 위치에 있지 않다. 유로존의 재정긴축과 성장은 동전의 양면과 같다”고 해명했지만, 긴축론이 수세로 몰리는 상황이다. 성장과 긴축의 균형이란 말은 허울좋은 말장난이다. 선거를 앞둔 정치인들로서는 뼈를 깎는 구조조정보다 당장의 경기부양이 당연히 솔깃하다. 돈 풀어 인플레를 조장하는 것을 성장이라고 우기는 것은 정치인들의 담합이자 음모다. 일본도 그렇게 잃어버린 20년을 겪었다. 그런 가짜 성장은 경제주체들의 도덕적 해이를 부추기고 구조조정을 지연시켜 경기의 복원을 더욱 요원하게 만든다.

유로존은 뼛속까지 곪은 나라와 멀쩡한 나라가 뒤섞여 회복 난망인 중증환자다. 하향 평준화의 전형이다. 더구나 유럽중앙은행(ECB)이라는 옥상옥을 두어 개별 국가의 의무와 책임을 희석시키는 구조다. G8 정상들은 “위기 해법이 모든 국가에 동일하게 적용될 수 없다”면서도 그리스의 유로존 탈퇴는 한사코 안 된다는 입장이다. 중증환자에게 당장 영양주사를 놔줘야 한다는 정치 레토릭이 먹혀드는 게 요즘 유로존이다. 그것이 성장이라는 단어에 그럴 듯하게 포장돼 있다.

정치인들은 국민에게 땀과 눈물을 요구할 의사도 의지도 없다. 오히려 임기만 넘기면 된다는 님트(NIMT·Not In My Term) 증후군만 팽배하다. 미국도 다를 게 없다. 벤 버냉키 중앙은행(Fed) 의장조차 “저금리 정책이 주택시장 거품에 져야할 책임이 없다”고 발뺌하는 판이다. 낮은 생산성과 과잉부채로 초래된 경제위기의 처방전은 하나다. 시장의 자생력을 되살리는 처방이 있을 뿐이다. 돈 푸는 경기부양은 더 큰 위기의 시한폭탄일 뿐이다. 정치에 오염된 경제의 타락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