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최대 규모 다단계 사기사건인 일명 ‘조희팔 사건’의 주범 조희팔씨가 이미 사망해 국내에 시신이 안치된 것으로 추정된다는 경찰의 조사 결과가 나왔다. 경찰청 지능범죄수사대는 “조씨가 지난해 12월18일 중국에서 급성심근경색으로 숨진 것으로 보인다”고 21일 밝혔다.

조씨는 피라미드업체 A사를 차리고 2004년부터 5년 동안 “의료기기 대여업으로 고수익을 낼 수 있다”고 속여 5만여명의 투자자를 모은 뒤 4조원 가까운 돈을 가로챈 혐의를 받고 있다. 2008년 10월 지명수배됐지만 같은 해 12월 경찰의 추적을 따돌리고 중국으로 밀항한 뒤 종적을 감췄다.

경찰은 조씨가 가짜 주민등록·운전면허증을 만들어 조선족으로 ‘신분세탁’을 한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경찰에 따르면 조씨는 지난해 12월18일 자신을 만나러 온 애인 K씨, 지인들을 중국 모처에서 만났다. 도심의 한 호텔에서 저녁식사를 한 뒤 호텔 지하에 있는 가라오케에서 술을 마신 조씨는 호텔 방으로 돌아갔으나 복통을 호소하며 쓰러졌다.

응급차로 이송되던 조씨는 결국 급성심근경색으로 숨졌다. 사망진단서는 인근 병원에서 발급받았으며 시신은 현지에서 화장된 뒤 국내 모처에 안치됐다. 경찰은 이 같은 정황을 조씨의 주변인들 자택과 사무실을 압수수색해 찾아낸 사망진단서, 화장증, 당시 장례식장 장면을 담은 동영상 등을 통해 파악했다.

조씨의 형제·자녀 등 일가족 10여명이 지난해 12월19일 돌연 중국으로 출국한 것도 알아냈다. 경찰은 조씨가 은닉 재산을 빼앗기지 않으려고 ‘사망 자작극’을 벌였을 가능성도 염두에 두고 있긴 하다. 그러나 유골은 유전자 감식이 불가능하며, 당시 조씨의 지인이 찍은 장례식장 동영상에 신빙성이 있다고 판단, 조씨가 숨졌다는 잠정 결론을 내렸다.

조희팔사건은 조씨가 총경급 간부 등 경찰 관계자들에게 사건 무마와 밀항을 부탁하며 돈을 건넸다는 의혹이 제기되면서 경찰 안팎에서도 주목했던 사건. 조씨가 잠적한 뒤 지지부진하던 이 사건은 대구지검 서부지청이 공범인 A사 전 운영위원장 최모씨와 같은 회사 사업단장이었던 강모씨를 지난 16일 중국에서 강제송환하면서 재부상했다.

김선주 기자 sak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