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연천 기행, 구석기부터 DMZ까지…'30만년 시간여행' 떠나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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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사유적·고구려城·신라왕릉
비무장지대 철책…역사 켜켜이
임진강따라 1.2㎞ 직벽 주상절리
자연의 창조활동에 고개 저절로
비무장지대 철책…역사 켜켜이
임진강따라 1.2㎞ 직벽 주상절리
자연의 창조활동에 고개 저절로
한반도의 중심을 자처하는 두 지역이 있다. 경기도 연천과 강원도 양구다. 연천은 한반도의 경도와 위도의 중앙선이 만나는 중부원점이 있어서 그렇다고 하고, 양구는 지도상의 대각선이 만나는 지점에 있다며 이렇게 주장한다. 그 자부심, 대단하다.
경기도 최북단 접경지역인 연천은 기나긴 역사의 축소판이다. 역사교과서에서 배운 전곡리 구석기 유적지를 비롯해 고구려 성벽과 신라 왕릉, 고려 왕과 공신들을 모신 숭의전, 분단의 비극이 지금도 이어지고 있는 비무장지대(DMZ)까지…. 신생대 4기에 분출한 용암이 침식되면서 직벽으로 형성된 길이 1.5㎞의 주상절리대는 보는 이를 압도한다.
◆30만년 전으로의 시간여행
37번 국도를 타고 파주를 지나 연천에 들어서면 맨 처음 만나는 게 연천군 전곡읍 선사로의 한탄강 관광지다. 한탄교와 사랑교 사이 1.5㎞ 구간에 펼쳐진 수변 관광지인 한탄강 관광지는 1970년대 서울 청량리에서 주말 임시열차를 띄웠을 만큼 인파가 몰렸던 곳. 지금은 캐러밴 25동, 캐빈하우스 16동, 캠핑 사이트 86개소를 갖춘 국제 규격의 캠핑 명소로 탈바꿈했다.
한탄강 관광지를 지나면 곧바로 전곡리 선사유적지(사적 제268호)를 만나게 된다. 전곡리 유적은 1978년 미군 병사 그렉 보웬이 4점의 석기를 우연히 발견해 김원용 서울대 교수에게 알리면서 세계적으로 주목받는 유적지로 부상했다.
이곳에서 발굴된 구석기는 석기의 양면을 가공해 다듬음으로써 찍고 자르는 기능을 모두 갖춘 아슐리안 주먹도끼였다. 이는 구석기문화가 단순한 형태인 찍개를 사용한 동아시아 지역과 보다 발달된 형태인 아슐리안 주먹도끼를 사용한 유럽 및 아프리카 지역으로 구분된다는 미국 고고학자 모비우스 교수의 ‘구석기 이원론’을 뒤집었다.
◆강따라 펼쳐진 직벽의 주상절리
연천군 미산면 동이리에는 길이 1.5㎞의 거대한 주상절리가 임진강을 따라 펼쳐져 있다. 한눈에 보이는 길이만 1.2㎞여서 국내에도 이런 곳이 있었나 싶다. 주상절리 하면 제주 서귀포 주상절리를 떠올리기 쉽다. 서귀포 주상절리는 바다 위로 솟은 육각형 모양이 뚜렷한 데 비해 임진강 주상절리는 칼로 내리친 듯한 직벽이다.
조산 활동이 활발했던 신생대 4기(170만~1만년 전)에 철원에서 평강에 이르는 한반도 중부 지방에는 현무암질의 용암이 분출해 용암대지를 이뤘다. 이후 하천에 의해 침식되면서 추가령에서 전곡리에 이르는 120㎞의 주상절리대가 형성됐다. 연천의 임진강과 한탄강~차탄천의 주상절리도 이렇게 만들어졌다. 몽글몽글한 돌이 끝도 없이 깔린 강변에서 거대한 성벽처럼 버티고 선 주상절리와 그 직벽에 돋아나는 푸른 잎들을 보니 자연의 위대한 창조활동에 경외감을 느끼게 된다.
차탄천의 주상절리는 기둥모양이 부러지거나 닳아서 몽당연필을 묶어놓은 듯하다. 지금은 몽당연필 같은 주상절리 위를 밟고 다닐 수 있지만 보호구역을 설정해 보존하는 일이 시급해 보인다.
◆고구려성을 만나다
남한에서 확인되는 고구려 유적 93개소 가운데 63개소가 임진강·한탄강 유역, 양주분지 일원, 아차산 일대 등 경기 북부 지역에 분포한다. 그중 임진강·한탄강 유역의 고구려 유적은 덕진산성만 빼고는 모두 연천군에 있다.
이들 유적은 대부분 임진·한탄강 유역의 북안에 있는데 여울목, 나루터 등 강을 건널 수 있는 길목에 자리잡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연천은 서해의 뱃길을 이용하지 않고 육로를 통해 평양과 서울을 연결하는 최단거리상의 교통 요지다. 임진·한탄강을 따라 수십㎞에 걸쳐 15~20m의 강안 절벽이 형성돼 있어 강을 건널 수 있는 요충지를 장악하면 신라와 백제의 분진을 효율적으로 막을 수 있었던 것이다.
당시의 모습을 짐작케 하는 유적이 미산면 동이리의 당포성과 장남면 원당리의 호로고루성, 전곡읍 은대리의 은대리성이다. 주상절리와 가까운 당포성은 6세기쯤 반도로 남진한 고구려가 신라와 백제 연합군에 맞서 세운 전술 성곽이다. 강 위로 불끈 솟은 높은 자연 지형을 효율적으로 이용해 쌓은 천연 성곽으로 파주, 동두천 일대까지 모두 조망할 수 있는 형세다. 신라 마지막 왕 경순왕릉도 연천에 있다.
다음 목적지는 고려와 조선으로 흘러간다. 조선을 세운 태조 이성계는 고려 왕조에 대한 예우 차원에서 공양왕의 동생 왕우와 두 아들에게 경기도의 마전(지금의 연천 미산면 일대)을 내리고 태조 왕건, 혜종, 성종, 현종, 문종, 원종, 충렬왕, 공민왕 등 8대 왕의 위패를 모신 제사를 지내도록 했다. 이후 유교적 잣대에 따라 제례 대상이 축소돼 태조, 현종, 문종, 원종 4왕과 신숭겸, 정몽주 등 고려 충신 16인을 모신 제례를 지금껏 지내는 곳이 바로 숭의전(崇義殿)으로 임진강변이 훤히 내려다보이는 미산면 산자락에 있다.
조선시대 황실 가옥인 염근당 역시 연천에 보존되어 있다. 고종의 영손인 황족 이근(李芹)의 고택인 염근당은 19세기 전통 황실 가옥으로 원래 서울 명륜동에 있던 것을 지난해 이곳 연천 자은산 기슭으로 이건했다. 건축양식을 전혀 훼손하지 않으면서 대들보, 서까래, 기둥 등 목재와 기와, 주춧돌, 기단석, 토방돌까지도 그대로 사용해 지었다.
◆DMZ와 평화누리길
연천군은 경기도 최북단의 DMZ 인근 지역을 걸을 수 있는 평화누리길 3개 코스를 개발해 놓았다. 황포돛배~숭의전~군남홍수조절지~신탄리역을 잇는 코스다. 평화누리길을 걷노라면 임진강 주상절리와 당포성, 겸재 정선의 국보급 그림 ‘웅연계람’의 배경이 된 풍경까지 볼 수 있다. 연천군 문화관광과(031-839-2061)에 미리 신청하면 북한 땅을 한눈에 바라볼 수 있는 열쇠전망대를 기점으로 1㎞ 길이의 철책선을 따라 걷는 철책체험도 할 수 있다.
연천은 수도권에 속하면서도 전혀 수도권답지 않은 지역이다. 행정구역(696㎢)이 서울(605㎢)보다 넓지만 98%가 군사시설보호구역이다. 파주 포천 등 인근 지역에 비해 개발이 덜 된 탓에 연천군민들은 불편하겠지만 자연을 음미하는 여행자에겐 다행이라고 할까.
여행 팁 민물고기 매운탕 별미
한탄강, 임진강을 끼고 있는 연천은 민물고기 매운탕으로 유명하다. 전망이 멋진 물가 언덕에 자리한 연천읍 고문리의 불탄소가든(031-834-2770)의 매운탕이 맛나다.
메기와 참마자, 참게 등을 넣고 칼칼한 양념에 끓여낸다. 밑반찬으로 함께 내오는 붕어찜도 맛있다.
청산면 대전리 한탄강오두막골((031-832-4177)에선 가물치살을 회로 떠 양파와 함께 재웠다가 불고기로 구워 먹는 맛이 일품이다. 부드러운 가물치 살이 철판에 익으면서 군침을 돌게 한다.
망향비빔국수(031-531-2507)는 1968년 군인들이 허기를 때우는 작은 가겟집 먹거리로 시작해 지금은 전국적인 체인망을 가지고 있는 국수명가다. 매콤달콤한 양념, 쫄깃한 면발이 끝내준다.
연천=서화동 기자 fireboy@hankyung.com